낮은 질병 이해도 탓 전국 확산 가속도
공공병원 가운데 감염내과 운영 2곳뿐
질병관리본부, 사스 때보다 ‘무능 행정’
국내 역학조사관 34명뿐…인력 태부족
정부 역시 ‘의료한류’, ‘K-메디’ 등의 이름으로 한국 의료산업을 주요 수출 품목으로 육성 중이다. 주요 공략 국가는 풍부한 자본력을 갖춘 중동과 보건의료 신흥시장인 남미다. 대통령이 직접 이들 지역을 방문해 한국 의료를 홍보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유독 신종 감염병에는 취약한 모습이다. 2009년 신종플루(H1N1)에 이어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특히 메르스는 과거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나 신종플루를 뛰어넘는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기존 의료계의 상식를 벗어나 무서운 전파력으로 사회 전체를 마비시켰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메르스 확산의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는 메르스가 크게 번지는 상황에서도 감염자가 머문 병원명을 숨겼다. 메르스가 주로 ‘병원 내 감염’이라는 국제 보고가 있었지만 같은 의료업계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지 18일만에 외부 압력에 의해 공개했다.
컨트롤타워도 없었다. 정부 차원의 메르스 대책본부 등이 4~5개나 만들어져 혼란만 가중됐다. 함께 감염병 차단에 나서야 할 지방자치단체와는 비판의 날을 세우기에 바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 정부가 구성한 ‘한국-WHO 메르스 합동평가단’도 이런 점을 강도 높게 지적했다.
평가단은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가 제일 중요한 데 이 부분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또 “리스크를 관리할 거버넌스(협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 혼란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질병관리본부의 허약함도 사태를 키웠다. 정부는 2003년 사스가 국내를 강타하자 감염병의 철저한 방역을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었다.
학습 효과는 없었다. 질본은 신종플루 때보다 더 무능한 사태 해결 모습을 보였다. 특히 초기 대응에서 역학조사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역학조사관의 업무는 감염병의 전파 경로를 추적해 추가 확산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질병에 대한 전문성과 업무 연속성, 전염병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초기 ‘1차 진원지’인 팽택성모병원에서 격리 대상을 지나치게 좁게 설정해 다수의 원내 감염자를 놓쳤다. 이로 인한 2~4차 감염자가 속출했다. 현장 역학조사관의 판단 실책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국내 역학조사관은 34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질병관리본부 소속 정규직 공무원은 단 2명뿐이다.
나머지 32명은 군 복무 대신 3년간 공공보건기관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다. 역학조사의 전문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만5000여명의 역학조사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매년 70여명 이상의 역학조사관을 양성한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은 “역학조사관의 적정 규모는 인구 50만명당 1명 이상”이라며 “우리나라는 최소 10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고 동시에 전문적인 훈련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한이 제한적인 것도 문제다. 질병관리본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때문에 촌각을 다투는 전염병 대응에서 ‘병원 폐쇄’ 등 중요한 결정을 하려면 복지부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인사·예산 권한도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질병관리본부를 처로 승격시키고 인력과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감염병에 대한 낮은 이해로 사태가 전국화됐다.
복지부도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 “메르스 바이러스는 국내 대부분 의료진에게 알려지지 않아 발생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실제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지난달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들른 3곳의 의료기관 중 어느 한 곳도 메르스 증상을 의심하지 못했다.
감염병 대응의 최일선에 있어야 할 공공의료기관은 전문성과 인력 및 예산에서 민간병원에 밀려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전국 33개 지역거점 공공병원 가운데 감염내과 전문의가 상주한 병원은 두 곳에 불과하다. 보건소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진 대부분이 공보의여서 감염병 전문성이 크게 떨어진다.
이와 관련 박찬병 전 천안의료원장은 “현행 보건소 제도를 공보의가 아닌 정규직 의료인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감염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