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각종 현안에 대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워온 유 원내대표를 박 대통령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유승민 흔들기’를 표면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로써 당청관계는 또 한 번 살얼음판을 걷게 됐지만, 일단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관계를 개선하겠다"며 일보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내 사퇴요구에 대해서도 그는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일축했다.
여기다 당내 친박(親朴)·비박(非朴) 등 계파갈등이 이번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인해 증폭돼, 향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여권 내 파워게임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당청·당내 갈등 중재를 제대로 못할 경우 김무성 대표의 리더십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유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가해진 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공격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오후 의총 결과를 듣고 (거취 문제를) 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국회선진화법상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내심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와대가 학수고대한 공무원연금법 개정 총대를 멘 유 원내대표가 당시 여야 협상과정에 국회법 개정안 카드를 거부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라며 꼭 집어 힐난했다. 사실상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까지 나왔다.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구체화 되자, 친박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승민 책임론'에 가세했다. 김현숙 의원은 지난달 의원총회를 언급하며 유 원내대표가 위헌적 요소가 있음에도 운영위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고해, 국회법 개정안이 결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까지 이어졌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김태흠 의원은 이날 개인성명을 통해 "유승민 원내대표는 무능 협상과 월권 발언으로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해 책임지고 사퇴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회법 처리 과정을 주도해 당·청간의 불협화음을 내고 집권당으로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유 원내대표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공격했다.
친박계의 공세에 비박계는 "유 원내대표에 책임 묻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실종"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박민식, 황영철, 김세연 의원 등 비박계 재선 의원들은 이날 의총 전에 점심시간까지 할애하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론에 맞설 대응책 마련에 골몰했다.
이런 혼란 속에 김무성 대표가 당청 및 당내 갈등을 해결하는 묘수를 낼 지도 관심사다. 김 대표는 이날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며 "특별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법률 해석적인 문제"라고 갈등 봉합에 주력했다. 또한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을 자제했다. 이를 두고 자칫 김 대표가 잘못 중재에 나섰다간 유 원내대표와 '동반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음을 의식한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유 원내대표가 당장 자신의 사퇴 의사를 표명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원내대표를 관둘 때 관두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모든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한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조차 이날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가) 한 번이라도 경제 법안을 살려본 후에 (정부가) 비판받고 싶다’는 말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초 이날 예정된 본회의에서도 '크라우드펀딩법'이라 불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대부업법' 등 민생경제법안 등이 야당의 보이콧으로 인해 처리가 요원해졌다.
이에 따라 당분간 유 원내대표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야 협상을 이끌고, 이후 거취를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그는 이날 오후 소집된 긴급 의총에서 "사퇴요구는 더 잘 하란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면서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관계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립 성향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은 당초 입법부 대 행정부 갈등 양상에서 내년 총선, 더나아가 대선을 앞두고 여권내 파워게임의 향배를 가늠할 중대 사안으로 부상한 셈”이라며 “이번 사안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여권의 내홍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