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준상(47)도 다작 배우 중 한 명이다. 앞에서 언급한 배우들과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매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
지난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유준상은 영화와 드라마 현장을 오가며 무대에까지 오르고 있다. 여기에 앨범까지 꾸준히 내고 있으며 그림 전시회까지 열고 있다.
쉼 없이 달려온 유준상에게 있어 18일 개봉을 앞둔 ‘성난화가’(감독 전규환·제작 트리필름)는 고난이도 액션까지 요구한 작품이다. 유준상을 지난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 화두인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걱정부터 했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사실 다 잊고 있었어요.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기억이 나서 깜짝 놀랐죠.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다 잊어버렸지’라는 생각도 했어요. 2개월 동안 몸을 만들고, 액션스쿨에 다니며 무술 연습도 했죠. 특히 ‘전설의 주먹’ 당시 제 대역이었던 친구라서 더 설렁설렁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친구 때문에 특히 더 열심히 하기도 했는데, 사실 2개월 동안 ‘저예산 영화인데 이렇게까지 액션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죠(웃음).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긴 것 같아요. (제작)여건이 힘드니까, 제 몸이라도 잘 만들어 보탬이 돼야 겠다고요. 그래서 모든 배우들, 스태프들이 열심이었죠.”
유준상이 맡은 ‘화가’는 사실 ‘천사’라는 설정이다. 신이 내려 보낸 천사가 악한 인간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전규환 감독과 상의했던 엔딩신(scene)은 화가의 등에서 날개가 나오는 것이었는데, CG(컴퓨터그래픽)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고.
“이미지 상으로 천사를 표현하기 위해 십자가를 넣으셨더라고요. 저는 천사라는 설정 때문에 일부러 표정의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정말 무표정으로 지냈죠. 그런 상황에서 감정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사람들을 죽이고 장기를 적출하는 연기 자체도 힘들었고요. 미술팀에서 그렇게 열심히 하더라고요. 진짜처럼 보여야한다면서 더 리얼한 소품을 갖다 놓으니까 좀 거북하더라고요.”
그만큼 영화는 잔인하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얼핏 보이기도 하고 상상이 되기도 한다. 힘들 게 뻔히 보이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전규환 감독님은 몇 년 전부터 만나왔죠. 제작사 PD가 제 학교 후배에요. 어느 날 ‘선배님, 영화 한 번 봐주세요’라면서 시나리오를 보냈더라고요. 봤더니 어렵고 힘들었죠. ‘이런 영화를 왜 만들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시나리오에 자꾸 빠져들더라고요. 정말 이 시나리오처럼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감독님 영화들을 찾아 봤어요. 전작들을 보면 항상 치열한 감정들이 영화에 들어있더라고요. 자기를 벗어버려야만 나올 수 있는 연기들이 있었죠. 저도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사실 예전에 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감독님도 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셨거든요. 상을 같이 받으면 돈독해집니다(웃음).”
저예산 다양성영화라는 점도 유준상에게는 끌린 이유 중 하나다. 홍상수 감독과 수 편의 영화에서 작업을 해오며 저예산 영화에 단련이 됐다는 그는 다양성영화의 즐거움을 피력했다. 상업영화에서는 펼쳐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엑터스 김종도 대표가 반대했지만 설득했다.
“솔직히 노개런티로 작품에 출연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도 현장은 즐거웠어요. 이렇게 예산이 없는데도 ‘이런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이 났죠. 감독님도 타협을 거부했어요.”
“벌써 공연만 20년째죠. 20년 동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죠. 뮤지컬은 잠깐이라도 쉬면 다시 서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무대를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솔직히 할 때마다 힘들죠. 항상 매 공연마다 마음을 졸여요. ‘오늘 실수를 하면 어쩌지?’ ‘다음 대사는 뭐였지?’라면서 끊임없이 외우고 연습하죠. 그 순간순간이 저한테는 엄청난 공부가 돼요. 트레이닝인 것이죠. 그래서 계속 공연을 하는 것이고요. 배우는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직업이니까 항상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보여드리고 싶어요. ‘성난화가’도 그런 영화 중 하나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목표에요. 공연을 할 수 있는 몸 상태, 어떤 영화도 찍을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요. 그래서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죠. 뮤지컬에서 노래 못하면 후기에 바로 올라와요. ‘제발 노래하지 마세요’라는 글도 있죠. 그럼 진짜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리죠. 그래서 뮤지컬 배우들은 다들 정말 열심히 합니다. 치고 오라오는 후배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해요. 노래는 연기를 잘 하려고 하는 것이죠. 연기를 공부하는 패턴이 노래와 뮤지컬에도 적용되니까요.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아내 홍은희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부부가 배우다보니 서로 조언을 하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아내에게 연기 지도요? 지도 들어갔다가는 힘들어지죠. 아예 그런 것 자체를 안 하고 무조건 잘했다고 하죠(웃음). 아내는 저한테 조언을 되게 많이 해요(웃음). 저는 이상하게 잘 안되던데…. 근데 진짜로 아내를 보면 장하다는 생각을 해요. 열심히 잘 하는구나. 서로 같은 작품을 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와이프가 하자고 하면 해야겠죠(웃음)? 저는 왜 대들지 못할까요?”
안방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