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지훈 기자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중징계 확정에 이은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사퇴로 KB사태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사실상 사퇴 거부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임영록 KB금융 회장에 대한 사퇴압박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러모로 KB금융은 당분간 극심한 경영공백 및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징계를 중징계인 '문책경고'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 22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이들에 대해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로 하향 조정한 것을 놓고 2주간의 장고 끝에 첫 거부권 행사를 통해 뒤집은 것이다.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중징계 처분을 받자 KB금융과 국민은행 모두 충격에 빠졌다. 금감원 제재심을 통해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되면서 내부 갈등 수습 및 조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이날 결정으로 모두 물거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KB금융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LIG손해보험 인수를 눈앞에 둔 상황이어서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KB금융은 금융당국에 LIG손보 자회사 편입을 신청한 상태로 다음달 말쯤 금융위 회의를 통해 편입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승인을 거부할 경우 또다시 '인수·합병(M&A) 잔혹사'를 이어가게 된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금감원 역대 최초로 제재심의 결정을 뒤집으면서까지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이미 장기화된 KB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물러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초 "제재심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온 최 원장이 2주간 장고 끝에 급선회한 것은 제재심 결과 발표 이후 오히려 심화된 KB측의 내홍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최 원장은 제재심 결과에 대해 불만을 가졌으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KB금융 내부 화합을 위해 마련된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이 행장이 행사 진행에 불만을 표출하며 동석한 계열사 CEO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뛰쳐나왔다. 제재심 결과 발표 직후 마련된 행사인 만큼 갈등을 수습하고 내부 화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됐지만 정반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여기에다 이 행장이 주전산기 교체에 관여한 지주 및 은행 임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같은 과정을 지켜보면서 최 원장은 갈등의 두 축인 임 회장과 이 행장이 계속 현직에 있는 한 KB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은 브리핑에서 "금융사 최고경영진이 제재 대상자가 됐다는 것 자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주와 은행 갈등으로 금융사의 건전경영을 훼손할 경우 엄중히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에는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문책경고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건호 행장 사임, 임영록 회장은 거부
이 행장은 중징계 결정 발표 직후 "은행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며 즉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행장의 자진 사퇴로 임 회장 역시 사퇴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주사와 그룹 내 주력 계열사 모두 경영공백 사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행장의 사퇴에 따라 국민은행은 행장 대행 및 차기 행장 선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행장의 사임으로 우선 부행장 중 한 명이 대행을 맡기 위해서는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만큼 조만간 이사회를 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경우 영업본부장인 박지우 부행장이 등기임원이어서 당분간 박 부행장 대행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
차기 국민은행장은 KB금융 회장과 사외이사 2인 등 총 3명으로 구성된 '계열사 대표이사후보 추천위원회(대추위)'에서 선임된다. 대추위 위원 중 한 명인 임 회장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KB금융 내부 논의 절차를 거쳐 차기 행장 선임 작업에 돌입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퇴 거부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KB금융 안팎에서 여전히 임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보여 차기 행장 선임절차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B금융 측은 "KB의 경영 공백을 메꾸기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조직안정화와 경영정상화를 위해 전 임직원 및 이사회와 긴밀히 협력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