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은 마네의 ‘올랭피아’(1863). 이 그림은 1865년 살롱전에 출품됐을 당시 ‘외설’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보수적인 미술계를 들썩이게 했던 화제작으로, 베르트 모리조는 이 그림을 보고 돌아와 모사해 언니 에드마를 놀라게 한다.
이후 마네가 베르트에게 자신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 간청해 언니 에드마와 함께 마네의 집에 처음 방문하는 장면에서는 ‘풀밭 위의 점심’(1863)이 화면을 장식한다. 이 그림은 배경이나 인물, 각종 요소들의 크기나 위치에서 원근법을 무시하고 화면 속 대상들의 세부 묘사를 단순화하는 평면적인 표현기법으로 오늘날 모더니즘의 출발을 알린 혁신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베르트가 어머니와 함께 마네의 집에 방문했을 때 출입문 옆에 있던 ‘피리 부는 소년’(1868)은 영화 속 등장하는 명작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 이 그림의 모델은 ‘올랭피아’의 모델이었던 ‘빅토린 모렝’이라는 설도 있으나 황제 친위대 곡예단의 ‘페피니에르’라는 소년으로 알려져 있다. 손과 발 부분을 빼고는 그림자가 전혀 없는 평면적인 묘사로, 인물의 실재감을 표출시키면서 빨강, 검정, 녹색 등 최소한의 색만을 사용, 개성이 강한 합창곡 같은 느낌의 작품으로 마네의 천부적인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영화 후반부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 중 영화의 메인 포스터로 사용되어 호기심을 자아낸 ‘로리앙 항구’(1869)는 베르트가 결혼한 언니 에드마가 살고 있는 브르타뉴 주의 로리앙에 찾아가 언니의 집에 머물면서 그렸다. 이 그림은 여성이 공공장소를 혼자 돌아다닐 수 없었던 시대에 여인 홀로 항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만으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 파스텔조의 부드러운 색채가 전하는 안정감과 함께 무거운 느낌이 나는 유화를 맑고 가벼운 수채화 풍으로 그려낸 표현기법으로 그녀의 재능을 인정받게 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과 자신만의 화법에 긴 시간 고민을 하던 베르트가 마침내 인상파 화가들의 후원가로부터 첫 거래 제의를 받게 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요람’(1872). 이 그림은 언니 에드마가 그녀의 딸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모습을 섬세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붓 터치로 묘사한 작품으로 인상파 회화 작품의 걸작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그 외에도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에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마네를 향한 감정들로 심경이 복잡하던 시점에 어머니와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완성한 ‘독서, 어머니와 언니 수잔의 초상’(1870), 영화 후반부 후원가로부터 공기와 빛으로 그린 듯 하다며 극찬을 받게 되는 ‘나비채집’(1874),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는 ‘부채를 든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1874)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 마네와 베르트의 작품들이 곳곳에 등장해 마치 스크린이 아틀리에로 옮겨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인상파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와 19세기 인상파 최초의 여류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뜨거운 교감과 그들의 불후의 명작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는 지난 3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