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가번스의 전설’이라는 영화(사진)가 있다. 헐리우드 영화배우 윌 스미스가 ‘베가 번스’라는 캐디 역할로 나오는 이 영화는, 골퍼라면 꼭 보아야 할 멘탈 레슨을 담고 있다.
한때 유망주이었지만 1차대전 참전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자학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는 ‘주너’는 당대 최고의 골퍼인 바비 존스, 월터 헤이건과 함께 라운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오랫동안 클럽을 손에 쥐지 않았던 주너는 과거 자신의 기량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실력으로 갤러리의 비웃음을 살 지경이다. 참담한 심정으로 꾸역꾸역 홀을 이어가던 그에게 번스가 말을 건넨다.
번스가 말하는 ‘필드’(field)는 ‘몰입에 빠진 상태’를 뜻한다. 다른 용어로는 ‘존’(zone)이라고도 한다. 골퍼는 한 라운드동안 몰입에 빠졌다가 나오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네 명이 한 라운드를 하는데 5시간가량 걸리지만, 각각의 골퍼가 몰입해야 하는 시간은 1시간이 채 안된다. 자기 차례에 30∼40초 몰입했다가 빠져나오고, 또 다시 자기 차례가 되면 순간적인 몰입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 지속적으로 몰입을 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것이 골프다.
한 라운드동안 이런 몰입의 패턴을 유지하려면, 심적 동요을 일으킬 행동이나 언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 골퍼에게 가장 치명적인 심적 동요거리는 바로 ‘골프 이야기’다.
전반 9홀을 잘 마치고 쉬면서 “너 오늘 이대로만 치면 ‘싱글’하겠다”는 것은 절대 격려의 말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망가뜨리고 싶으면 그렇게 말하면 된다.
진정으로 잘 치길 원한다면, 골프와은 상관없는 대화를 통해서 스코어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머리속을 비워주어야 한다. 즉,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욕심내지 말고 편히 쳐라”고 말해서도 안된다. 어느 한쪽이 자신의 말을 했다고 해서 듣는 이에게 그 효과가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듣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 그래서 ‘잘 치길 바란다’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좋은 스코어를 내는 것에 하등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베가번스의 전설’에서 베가의 말대로 존스의 프리샷 루틴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서 몰입의 경지에 빠진 주너는 멋진 드라이버샷을 날린다. 그러고 베가에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지?” 그런데 베가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오늘 헤이건은 빨강색 실크 양말을 신었군.” 베가는 주너의 몰입을 유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너의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얘기로 화제를 바꾼 것이다.
주말 골퍼들의 라운드에서 이런 식의 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누군가가 짧은 퍼트를 놓치면 동반자 중 하나는 꼭 “어이그, 경사를 더 봤어야 하는데….”하면서 안타까움의 훈수를 둔다. 이런 훈수가 해당 골퍼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다.
골프에서 멘탈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말들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것이 쌓이다보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입담의 덫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 한 귀에 들린 것을 다른 귀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흔히 프로들의 인터뷰에서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에 신경쓰지 않고, 나만의 플레이에 집중하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런 말 역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함으로써 머리속이 더 복잡해지겠는가? 단순해지겠는가?
골프칼럼니스트 (WGTF 티칭프로, 음향학 박사)
yjcho2@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