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만 나면 조직개편…제대로 가고 있나

2014-05-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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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조직정체성 책임 회피 온상…효율성 없는 시스템

개편돼도 공무원은 그대로…‘그 밥에 그 나물’ 여전

아주경제 배군득·김정우·신희강 기자 =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모 부처 정 과장은 최근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자고나면 조직이 바뀌어 버리는데 대한 스트레스다. 정체성도 모호하고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진다. 자신의 업무가 손에 익을 때쯤이면 다시 짐을 싸서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정 과장이 지난해 이동한 부서만 벌써 세 번째다. 거의 4개월에 한번 씩 옮겨 다닌 셈이다. 말 그대로 의자에 앉아 업무 파악하다 끝나버린 사례다. 이렇다보니 정 과장은 민원 상대나 업무 보고시 스스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는 “부처 내부에서도 무슨 사단만 벌어지면 조직개편하기 일쑤인데 국가조직을 한 번 개편하려면 수많은 공무원이 업무를 다시 배우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며 “이번 조직개편은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공무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며 세월호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공무원 사회에서도 ‘이건 아닌데’라는 반응이다.

제대로 된 사고정황과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잦은 조직개편이 불러오는 부작용은 뒷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산업통상자원부 “정확한 이름이 뭐에요”

“정권마다 입맛대로 쪼개고 붙이고….”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정부조직개편의 현 주소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서 되풀이되는 우리나라 정부조직개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관성 없는 조직개편에 해당 관료들의 업무 연속성이 깨지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 출범 때마다 조직개편 중심에 섰던 산업통상자원부를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과거 정권이 바뀔때마다 ‘상공부→상공자원부→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ㅡ>지식경제부’ 등으로 명칭이 변경돼 왔다. 5년 주기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붙였다 떼는 등 가장 많은 부침을 겪으며 지금의 산업부로 이어진 셈이다.

김영삼 정권은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해 만든 상공자원부를 통상정책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통상산업부로 개편했다. 김대중 정권 또한 3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통상기능을 담당하던 통상산업부는 산업자원부로 개편됐다.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산업자원부가 지식경제부라는 생소한 이름의 부처로 탈바꿈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 통상기능이 다시 이관 돼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로 재편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잦은 조직개편에 관료들의 전문성이 급격히 떨어짐은 물론 정책 일관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산업부 에너지정책 가운데 해외자원개발은 전 정부 역점사업 중 하나였다. 당시 에너지공기업 등은 경쟁적으로 해외자원개발에 앞장섰으며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도 앞 다퉈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방만경영 원인으로 지목되고 해당 공기업들은 당시 확보한 해외광구를 경쟁적으로 팔고 있는 실정이다.

◆ 업무혼란과 중복사각지대 양성 부작용도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통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과 해양수산부 부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편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여야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조직개편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잦은 개편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과 검토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정부는 48일이라는 짧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완성한 뒤 이를 발표했다.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가는 상황이다. 창조경제 구현이라는 목표하에 과학기술과 ICT(정보통신기술) 등을 포괄하는 매머드 부처로 꾸려진 미래부는 점차 존재감이 지워지는 상황이다. 지난 1년간 다른 부처의 최대 10배에 이르는 약 1500여건의 자료를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의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해수부도 마찬가지다. 해양강국 실현을 위해 어렵게 부활했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관피아’(관료+마피아) 부조리를 드러내며 1년도 채 안 돼 존폐 위기에 처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생긴 정책 사각지대 역시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 참사로 부각된 해양안전정책이다. 당초 해수부는 해양관제시스템의 선진화를 정책목표로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2008년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해수부가 국토해양부로 흡수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새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부처가 신설되거나 폐지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정책의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며 “정부는 단순히 구조적·제도적 측면 조직개편 접근에서 벗어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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