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그 발표가 난 다음날 또 울어버렸다"고 했다. 지난 2000년, 대표자리를 얼떨결에 수락했을때도 웃음보다 울음이 먼저였다. 하지만 '비온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은 그에게 들어맞았다.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시작한 '갤러리 사장'자리는 불가항력적이었지만 국내 미술시장을 탄력적으로 이끌었다.
30년 역사의 국내 대표적인 갤러리인 가나아트(gana art)를 14년간 이끌어왔던 이옥경(53) 사장이 또다시 도전에 나선다.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 대표이사 자리로 옮긴다.
쏟아지는 관심속에 기자와 만난 이옥경 사장은 "아직 정식으로 선임된게 아니라 인터뷰도 조심스럽다"며 몸을 낮췄다.
가나아트에서 '울보사장'으로도 유명한 그는 “심사숙고끝에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보도자료없이) 갑작스럽게 보도가 나와 깜짝 놀랐다"며 당황스런 모습을 보였다. 공식 결정도 안났는데 서울옥션 대표 운운하며 이야기하다 '낙동강 오리알'되는 건 아닌가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이 사장의 이러한 제스처는 '엄살'로 들린다. 미술계에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시선도 있다. "오빠가 대주주인데 안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옥션은 이 대표의 친오빠인 이호재 회장이 1999년 설립한 회사다. 이후 2008년 미술계 첫 코스닥에 상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회장은 미술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 29세에 가나갤러리를 차린후 미술시장 판도를 바꾸며 선두에 서왔다. 그가 손대는 사업은 모두 최초를 자랑한다. 국내에 '아트샵'을 만든 것도, 국내 작가를 프랑스 파리 FIAC아트페어에 첫 진출시킨 것도, 국내 작가를 발굴하며 지원하는 전속작가제를 도입한 것도 이 회장이다. 해외 유명 작품도 국내에 첫 소개한 장본인기도 하다. 1990년대 미국의 팝아티스트 톰 웨슬만,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게오르그 바젤리츠, 장 드뷔페, 조르주 브라크, 앤디 워홀 등 해외 유명 작가들을 해외 미술의 불모지였던 서울에 유치하며 열정의 능력을 발휘해 왔다.
이러한 오빠는 이옥경 대표에게 넘을수 없는 '큰 바위 얼굴'이었다. 오빠와 닮은 것은 '일을 벌이는 체질'이라는 점. 화랑대표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고민과는 거리가 먼 발랄한 9남매중 막내둥이였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어느날 오빠가 화랑일을 배워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렇게 1994년 가나아트 비서실을 시작으로 21년째 미술판에서 뒹굴고 있다.
“이번 인사는 오빠(이호재 회장)의 의중이 100% 반영됐어요. 국내 경매시장이 침체돼 있어 서울옥션을 살리라는 숙제를 제게 부여한 것 같아요."
이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이호재 회장은 "이 대표가 잘 할것"이라는 믿음을 보였다. 이 회장은 "이옥경 사장의 장점으로 고객들과의 네트워킹에 능한 것을 꼽았다. 이 회장은 "기업오너 등을 대상으로 한 CEO아트포럼을 10년이상 잘 이끌어오는 걸 보고 놀랬다"며 "서울옥션을 맡아서도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치고나가지 못하는 국내 경매시장이 답답하다고 했다. “7년 전 서울옥션이 홍콩에 사무소를 내며 진출하자, 중국 폴리옥션은 업무협약을 맺자고 요청해왔는데 지금은 입장이 달라졌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당시 서울옥션의 연매출은 800억, 폴리옥션은 700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폴리는 2조5000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서울옥션은 5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K옥션과 양대 미술품경매사로 쌍두마차지만 1000억 규모도 못미치는 국내 경매시장이다.
이런상황에서 '이옥경 사장'은 이호재 회장이 국내 경매시장을 구원하기 위해 내놓은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이 사장은 여성특유의 친화력과 신뢰감이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국내 대표 갤러리를 운영해온 만큼 기획력과 마케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서울역앞 옛 대우빌딩 외벽을 세계에서 가장 큰(100x78m) '미디어 캔버스'로 만들고, 현대백화점과 미스터피자와의 아트프로젝트, 디큐브시티의 작품설치 등 기업과 아트콜라보레이션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 사장은 "서울옥션으로 옮기게 되면 무엇보다 작가들과 헤어지게 된 게 무척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가나는 현재 매월 생활비를 지원하는 작가 18명에, 아틀리에 입주작가 60명, 전속작가 50명 등 후원작가가 100여명이 넘는다.
매월 작가에게 지급되는 돈만 수천만원. 리그림만 팔아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이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기업과 아트콜라보레이션, 공공미술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화랑주와 작가의 비즈니스 차원을 넘어 끈끈함으로 뭉쳐있어 '가나 식구'로도 불린다.
하지만 이제 달라져야 한다. 가나(독립법인)와 서울옥션(상장회사)은 한지붕 두가족이지만 살림이 천지차이다. 화랑은 매출구조가 표가 안나지만 옥션은 매회 할때마다 실적이 드러난다. 걱정도 많지만 이미 큰 그림을 그려놓은 듯 했다.
이 사장은 “서울옥션은 미술품경매외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여러 사업을 펼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가나아트에서 내부전시 뿐 아니라 외부기획전을 통해 단련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술시장의 대중화,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입니다. 기획경매, 중저가 경매, 포럼, 기업과의 공동마케팅, 새로운 예술이벤트등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이 사장은 "경매는 화랑에 비해 더 대중의 주목을 받을수 있는 영역이어서 정신바짝 차리고 있다"면서 "우선은 경매사 설립이래 15년째 3000명선에 머물고 있는 고객을 두배로 확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도전과 혁신이 필요하겠지요”
수년째 횡보세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다. 이 사장은 특유의 또랑하면서도 깐깐한 목소리로 자신감을 보였다.
"요즘은 고객들이 작품 동향에 대해 더 스터디를 많이 하고, 글로벌 마켓에 대한 정보도 깊고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어 전기만 마련된다면 미술시장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화랑과의 관계도 서로 윈윈하며, 시장에 탄력이 붙도록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겁니다. 재미있게 일 할수 있을 것 같아요.지켜봐 주세요."
전시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미술판을 확장하며 작가지원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동안 가나판화공방 개소(1987), 도서출판 가나아트 출범(1988), 파리 가나-보브르 개관(1995), 가나미술연구소(1996), 아트샵 개관(1997), 파리 국제공동체 참여(1996), 도예공방 양평 개소(1997), 작가 작업장 안성 설치(1997), 인사아트센터 개관(2000), 장흥아트파크 (2006) 가나아트 뉴욕 (2008),가나아트 컨템포러리 (2010)개관했다.
지난 1998년 인사동 시대를 마감하고 평창동에 가나아트센터를 짓고 제 2 도약을 꾀했다. 프랑스 건축가 장미셀 빌모트가 설계한 가나아트센터 건물은 지난 2000년 독일의 건축전문 기관인 타슈에 의해 2000년 밀레니엄건물로 선정된바 있다. 한편, 이옥경 사장이 서울옥션으로 옮기면 이호재 회장의 장남인 이정용 가나아트 상무가 대표자리를 이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