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만신' 포스터]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요즘에는 깊은 산골이 아니면 농촌에서 서낭당(서낭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집)을 보기 힘들다. 자연스레 서낭당 옆에 오색천이 둘러쳐진 신목(神木)과 돌무더기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과거 1980년대와 90년대 초에만 해도 마을에서 ‘굿’을 하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었다. 마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하는 의식인 굿은 큰 잔치였다. 평소 먹을 것이 없던 사람들은 ‘굿 보고 떡 먹는 날’이었다. 운이 좋으면 목에 기름칠도 할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굿을 책에서, 또는 가끔 TV에서만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사진=영화 '만신' 스틸컷]
영화 ‘만신’(감독 박찬경·제작 볼 BOL)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민속신앙 굿과 만신(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에 대한 작품이다. 박찬경 감독은 대한민국 대표 만신인 김금화 씨의 드라마틱한 삶을 ‘판타지 다큐’ 형식으로 조명했다.
다음에는 아들이 넘석한다(넘본다)는 뜻의 ‘넘세’(김새론)로 살던 유년시절부터 신내림을 받아 금화(류현경)로 이름을 바꾸고 만신으로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연, 중년이 된 이후 새마을 운동의 ‘미신타파’ 움직임으로 탄압과 멸시를 받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나호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중년 이후는 배우 문소리가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영화 '만신' 스틸컷]
영화는 만신 김금화 씨의 과거 모습들이 담긴 영상들에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의 연기가 더해졌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처음 본 사내와 결혼한 넘세는 시댁의 온갖 핍박에도 ‘개밥’을 훔쳐 먹으며 고난을 극복해 나간다. 김새론은 담담하게 넘세를 표현했다. 류현경은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만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내림굿을 받으며 흔드는 몸짓은 관객에게도 똑같은 진동을 느끼게 했다.
압권은 문소리. 마치 진짜로 내림굿을 받은 만신처럼 굿판을 벌이는 문소리의 연기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 표정부터 발놀림,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은 만신 그 자체이다.
[사진=영화 '만신' 스틸컷]
박 감독은 신내리는 장면 등 영화 중간 중간에 각종 신이 내려오는 모습을 CG(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몽환적인 느낌의 ‘판타지 다큐’ 장르로 완성됐다.
여기에 김금화 만신이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로 세상을 떠난 사망자들을 위해 ‘나라굿’ 장면과, 한국전쟁 당시 고향으로 떠나지 못하고 남한에 묻힌 이름 모를 북한군 병사들에 대한 ‘진혼굿’도 볼 수 있다.
‘만신’은 민속신앙인 굿을 믿어야한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문명의 발달과 산업화의 사이에서 이제는 사라져가는, 천시해 온 우리 민족의 공동체문화인 ‘굿’에 대해 ‘잊지 말아야할 전통’이라고 말한다. 내달 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