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같은 거대 국제 기구의 수장이 한인이 되는 일은 반 총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이다. 게다가 역대 세계은행 총재는 대부분 미국 백인이었다. 여기서 오바마가 왜 이런 모험(!)을 저지르고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국제 사회 속에 널리 퍼져 각계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뛰고 있는 한인들을 보노라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김용 후보는 이미 다트머스대 총장이 될 때부터 ‘최초의 아시안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총장은 거대 기업의 CEO와 비슷한 일을 한다. 학교를 대표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과는 다른 영역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 총장은 보통 수십억 달러 이상의 학교 재산을 굴리고, 더 높이 학교 명예를 고취시키고 학교 발전을 위해 뛴다.
따라서 김 총장이 다트머스대학교 총장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그는 한인임과 동시에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그의 인적 네트워크와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거대 기업과도 같은 학교의 선장 자리를 이사회는 아무에게나 넘겨주지 않는다. 김 총장의 얼굴색은 한인, 즉 아시안이었지만 그가 쌓은 업적과 인적 네트워크는 이미 우수한 백인을 능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번에 오바마가 김용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발탁한 일은 김 총장이 대학 총장이 되면서 인정받은 능력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흑인으로서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부임 초기부터 아시안을 비롯해 많은 능력있는 소수계를 발탁해 왔다. 그동안 미국 사회는 알게 모르게 백인들이 주무르는 국가가 되었고, 겉으로는 인권과 평등을 외치지만 사회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인종과 소득, 출신 배경 등으로 차별받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오바마는 이같은 유리천정(glass ceiling)을 걷어 내고 소수계가 능력 대로 쓰이는 전형으로 김 총장 카드를 끄집어 냈다.
일단 분위기도 좋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도 김 총장을 택한 백악관의 선택이 옳았음을 강조했다. WP는 “한국 태생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진 김 총장의 후보 지명은 그동안 백인 남성이 이끌어온 세계은행의 이미지와 실제 역할을 바꾸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공식적으로 총재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도 “김 총장은 최고의 후보”라며 치켜세웠다.
브라운대를 거쳐 하버드대 의대를 나와 모교에서 20년이나 의대 교수를 지낸 김 총장의 경력은 앞으로 세계은행의 주요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세계적인 기아나 난민 문제, 전염병 등 인류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주요 인류 이슈를 세계은행이 나서 드라이브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이미 비영리 의료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를 공동 설립해 의료 분야의 공공성을 각인시킨 인물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4년부터 2년간 에이즈 국장을 역임한 것도 그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발탁되는 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김용 총장의 후보 지명 발표 자리에서 “세계은행은 단순한 은행이 아니라 빈곤퇴치와 가난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강력한 수단이다. 김 지명자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위해 지난 20년간 헌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적임자는 없다”고 단언했다. 김 총장 후보가 앞으로 세계 인류가 안고 있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반 총장과 함께 한인을 대표하는 세계 리더로 거듭나길 바란다. 우리는 선배들을 따라갈 ‘반기문·김 용 키즈(kids)’가 한국과 미국, 더 나아가 전세계에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