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하오는 1967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85중을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그는 줄곧 반장을 도맡았다. 고등학교 1, 2학년 때 그의 담임선생님이었던 구밍친(顧銘琴)은 “루하오는 스스로 외부에서 원로 음악선생님을 모셔와 동료들과 함께 노래수업을 받는 등 일반 학생들과는 달랐다”며 그의 리더십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또 “화장실 청소가 잘 안 됐다고 질책했는데 그가 자원자를 모으자 곧바로 전 반의 동료들이 모두 호응했다”고 전한다.
고등학교 배구부 코치였던 정주펑(鄭九峰)은 “루하오는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며 “배구팀에서 루하오는 상대방의 전술 변화를 읽어 우리 팀의 전술을 대응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를 탁월하게 수행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곤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교시절 이미 시안 공청단 위원회의 유일한 중고생 위원이었으며 돋보이는 리더십으로 고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1985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었다. 공산당원이 된 시기가 아버지인 루홍성(陸鴻生) 시안건축과기대 교수보다도 1년이 빨랐다.
베이징대에 진학한 후 만 19세이던 1987년 그는 문화대혁명 이후 처음으로 직선으로 선출하는 학생회 주석에 당선됐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학교와 사회를 넘나들었다. 대학시절엔 베이징시 학생연합회 부주석을 맡았다. 그는 또한 베이징대에서 중국 유명 경제학자인 리이닝(李以寧) 교수의 수제자였다. 리커창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도 모두 리 교수의 수제자들이다. 루하오는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1990년 8월부터는 베이징시 칭허방직공장의 공장장 조리(助理)로 들어갔다.
그리고 만 27세이던 1995년 그는 직원이 5000명이나 되는 베이징(北京)시 칭허(淸河)방직공장의 공장장에 임명됐다. 당시 최연소 국유기업 최고책임자였다. 32세이던 1999년 11월엔 청장(廳長)급인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과기원구 관리위원회의 판공실 부주임 자리로 옮겨갔다. 이어 2003년 1월엔 만 35세 나이로 베이징 부시장 자리에 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베이징시 부시장 역사상 최연소였다.
베이징시 부시장 시절 공업경제와 식품 등 제품의 안전 및 품질감독 업무를 맡은 그는 풍부한 경제학 소양과 현대경영관리 경험을 잘 결합해 주위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번은 베이징 시내 대형 매장 주인들에게 주차장을 빨리 확보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꾸물대며 실행하지 않자,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시단(西單) 등 대형 매장에 직접 차를 몰고 가 시간을 잰 뒤 자신의 사례를 설명하며 이들을 설득해 결국 관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