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영화 왜?> 기괴한 객잔서 벌어진 핏빛 칼부림…영화 '혈투'

2011-02-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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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재범 기자)분명 제목만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는 영화팬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실망을 안은 채 극장 문을 나서게 될 것이다. 영화 ‘혈투’에 대한 첫 인상은 이렇다.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다. 제목이 아닌 영화의 얼굴을 짐작했다면 분명 다른 감성으로 다가오리라. 여기서 얼굴이란 영화의 본질이자 내적 심도다. 다소 어려운 단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혈투가 그런 영화기 때문이다.

혈투는 세 남자의 얘기다.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반대로 상당히 복잡하다. 한 곳에 갇힌 세 남자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된다. 이들 세 사람은 같은 조선 사람이며, 같은 조선군이다. 이들이 갇힌 곳 밖은 청나라 군사들이 애워싸고 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적이 아닌 아군을 상대로 칼부림을 나눌까.


영화는 갈수록 피를 말리는 극단의 상황에 주목한 채, 그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각자의 과거를 시간의 역순으로 관조한다. 또한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키며 세 사람 사이의 벌어진 감정의 골을 관객들로 하여금 메우게 만든다. 양반인 도영(진구)의 가문이 몰락한 이유와 헌명(박희순)이 왜 그렇게도 입신양명에 목을 맸는지. 또 탈영병 두수(고창석)가 눈보라가 휘날리는 만주 벌판을 혈혈단신으로 도망치면서도 절대 죽을 수 없는 이유와 그가 헌명과 도영에게 도끼를 겨누게 된 사연은 각자의 존재를 위한 이유고, 영화의 뼈대를 이어주는 힘줄이다.

이들 세 사람이 가슴 속에 품은 사연은 스스로에게 삶에 대한 집착과 함께 절대 죽을 수 없는 이유도 쥐어 준다. 하지만 각자의 길을 따라 살기 위해 들어선 만주 벌판 객잔은 삶을 쫓는 세 남자의 쉼표가 아닌 죽음의 전주가 시작되는 출발선이었다. 



감독은 세 남자가 만나는 출발선이자 마침표가 될 객잔을 황량함과 기묘함 그리고 공포감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마치 세 사람의 혈투를 오롯이 지켜보며 죽음 기다리는 사신의 모습으로 그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으로 그려놨다. 때문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객잔 외관은 영화적 환상과 맞물려 세 남자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 흐름을 조율하는 중간 다리 역할까지 한다. 마치 땅에 뿌리를 박은 채 굳건히 서있는 피에 굶주린 괴물로서, 허허벌판을 헤매는 세 인물을 빨아들여 죽음으로 안내하는 안내자 같은 역할 말이다.

반면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객잔과는 반대로 세 인물의 과거 회장 장면은 따스한 기운만이 감돈다. 이상적일 정도로 평온하며 고즈넉한 산천은 세 사람의 꿈속을 보여주는 환상처럼 구성했다.

영화는 극한의 대치와 세 인물의 현재와 과거의 기억, 경험이 교차하는 구성 탓에 다소 호흡이 길다. 감독은 당초 완성본보다 호흡을 더 길게 뽑아내려 했다고 한다. 보는 영화가 아닌 관객으로 하여금 읽는 영화로 기억되길 바랐기 때문이란다.



호흡이 길고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얘기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터라 시간이 지날수록 몰입도가 다소 떨어진다. 영화 자체가 세 인물의 내면적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기대와 달리 화려한 액션 장면도 그리 많지는 않다. 다만 연출을 맡은 감독의 말처럼 여백의 미를 강조한 영화적 화법과 영상미는 수준급이다. 객잔의 기묘한 외경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강렬함의 잔상이 지워지지 않을 정도다.

출신성분의 한계로 출세에 길이 막힌 군장 헌명으로 출연한 박희순은 기존의 폭발력을 누른채 강약을 조절하는 탁월함을 선보인다. 2009년 영화 ‘마더’를 통해 재발견이 이뤄진 진구는 몰락한 가문의 자제 도영을 현대극과 사극 톤으로 적절히 혼합해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고창석 역시 미친 존재감이란 호칭이 부끄럽지 않는 연기력으로 무게추의 중심을 잡았다.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영화 ‘부당거래’와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쓴 충무로 블루칩으로, 이번 영화를 통해 글이 아닌 영상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을 듯 하다. 개봉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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