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자동차서비스라는 간판을 단 5층 높이의 본관 건물과 달리 길 건너편의 공장은 창고를 개조한 듯 허술한 모습이었다.
사고로 차체가 심하게 훼손된 차량들로 가득한 창고형 공장에서 일하는 정비공들은 본관 건물의 직원들과 동일한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업체가 분명해 보였지만 경찰 차량까지 차량 정비를 위해 버젓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같이 대형 정비업체와 결탁해 영업을 하는 불법 하청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정비업계는 물론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 자동차 정비업소 절반이 불법 하청업체
24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전국의 자동차 정비업체는 3만4684개로, 규모가 큰 공장형 정비업체만 5000여개에 달한다.
정비업계는 전체 정비업체의 절반 가량이 무허가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재성 경기도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실장은 “경기도 내 정비업체 중 불법 하청업체가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관리법 57조에 의하면 정비시설 소유주가 시설의 일부를 다른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불법 하청업체들은 대형 정비업체 사업주에게 매월 300~40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공장의 일부를 빌려 차량 정비를 하고 있다.
사업주는 하청업자를 본인 소유 공장의 임직원 및 주주로 등록해 단속을 피하고 있다.
이같은 허점을 이용해 다수의 하청업자와 임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는 정비업체 사업주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 실장은 “정비시설만 갖춰놓고 불법 하청업체를 고용해 돈을 버는 ‘바지사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 수리비용에 보험료 부담까지… 소비자만 ‘봉’
불법 하청업체들은 임대료에 견인차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뒷돈까지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과잉 수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정비를 안 해도 될 부분을 정비하거나 수리비용을 허위로 작성하는 식으로 마진을 남기고 있는 것.
정비업계 관계자는 “정비업체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불법 하청업체는 이같은 기준을 무시하고 정비를 하다 보니 차량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며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순정부품보다 가격이 싼 부품을 사용하는 것도 소비자 피해로 직결되고 있다. 이는 잦은 고장의 원인이 되고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불법 하청업체 대부분이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차량복구 비용이나 사후 관리 책임을 공장을 임대한 사업주에게 전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불법 하청업체를 이용했던 한 소비자는 “차량 정비 후에도 자주 고장이 나 자동차관리법에 명시된 무상수리 보증기간을 근거로 사후 관리를 요구했지만 정비를 담당한 업체에서는 월세를 내는 하청업자일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고 말했다.
정비업계는 이미지를 실추를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청업체의 경우 과잉·부실 수리를 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소비자 불만이 많다”며 “정비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업체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견인차 사업주에게 과도한 뒷돈을 제공하며 물량을 독식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한 정비업체 사장은 “사고 차량을 끌고 온 견인차 사업주에게 수리비의 20%를 떼어주는 방식으로 물량을 독점하는 하청업체들도 있다”며 “기존 정비업체보다 하청업체에 물량이 몰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 하청업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단속이 필요하지만 관할 당국은 예산 및 인력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재 정비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권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지만 서류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관계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단속 의지”라며 “정부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