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 40대 가장인 김용수(가명)씨는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저소득층 생업자금 융자를 신청하기로 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인 저소득층에게 창업·운영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한달 가량의 실사를 거쳐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금대여 결정 통지서'를 받은 김씨는 부푼 꿈을 안고 취급 금융회사인 국민은행을 찾았으나 결국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생산직 근로자인 김씨는 은행이 요구하는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및 소득금액증명원을 제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급여통장 사본 등 다른 방식으로 소득을 증빙하겠다고 요청했으나 은행 측은 싸늘하게 거절했다.
김씨는 "사실상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근로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라며 "저소득층 지원이라는 정책 취지가 무색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금융회사가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지원 심사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해 정책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여신의 경우 보증인을 요구하는 사례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정작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지원 제도에서 연대보증을 종용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4일 보건복지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활용한 저소득층 금융지원 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자활 의지가 있는 저소득층에게 창업·운영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저소득층 생업자금 융자 제도를 운영 중이다.
대출 신청자가 사업계획서 등을 제출하면 거주 지역의 지자체는 실사를 거쳐 사업 타당성이 있을 경우 자금대여 결정 통지서를 발급한다.
통지서와 구비서류를 취급 금융회사에 제출하면 자금이 지원되는 구조다. 현재 특별·광역시는 국민은행, 이외의 지역은 농협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회사에 제출하는 서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소득 증빙을 위해서는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나 소득금액증명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관련 서류는 정규직 근로자만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다. 저소득층 대부분이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대출 심사에서 탈락한 한 계약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 중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은행 직원도 대출을 거절할 명분만 찾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심사 과정에서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 외에 은행이 대출 승인을 거절할 재량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복지부 자금지원과 관계자는 "복지부는 제도의 골격만 짜고 은행이 자체 심사기준을 활용해 대출 심사를 한다"며 "일반 대출과 동일한 절차를 적용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보는 이들도 발생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점진적으로 폐지되고 있는 연대보증 제도가 소외계층에 대한 금융지원 정책에 적용되는 점도 불합리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소득층 생업자금 융자 제도는 보증대출, 무보증대출, 담보대출 등 3종류로 구성돼 있다. 전체 지원 실적 중 85%가 보증대출이고 나머지 15% 가량이 무보증대출이다.
보증인 요건도 까다로워 연간 소득이 1200만원 이상에다 근로소득원청징수영수증이나 소득금액증명원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은행 등 해당 금융회사는 대손율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제도를 운영하면서 복지부로부터 받는 취급수수료는 1.5% 수준에 불과하고 보증인 요건 완화를 위한 손실보전금도 미미하다"며 "정부 보증이 담보되지 않아 손실이 발생하면 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대출 상환율이 높지 않다"며 "은행 측에 심사기준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은행 측 입장도 일정 부분 이해가 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햇살론과 같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납입 증명서 등도 소득 증빙 서류로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대출 신청자 대부분이 계약직 및 임시직인 데다 사업주가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득 파악이 쉽지 않다"며 "소득 증빙을 위한 서류 항목을 확대하는 방안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gggtttppp@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