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미국 달러화 가치의 급락이 세계 경제의 불안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초약세 움직임이 원자재 가격 상승과 각국의 통화 절하 경쟁을 부추겨 세계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장중 한 때 80.89 엔까지 밀렸다. 엔ㆍ달러 환율이 81 엔 선을 밑돌기는 1995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엔·달러 환율 추이(엔/출처:CNBC) |
블룸버그는 옵션 거래 추이 분석을 통해 엔ㆍ달러 환율이 올 연말까지 1995년 4월 수치인 79.75 엔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78%에 이른다고 전했다.
유로ㆍ달러 환율 역시 한때 지난 1월 이후 가장 높은 1.4122 달러를 기록했다. 위안ㆍ스위스프랑ㆍ호주달러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전날보다 0.66% 떨어진 76.56로 올 들어 최저치를 나타냈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의 추가 양적완화 기대감과 이날 나온 무역수지가 달러화 가치를 급락시킨 요인으로 풀이하고 있다.
달러인덱스 추이(출처:CNBC) |
연준은 최근 공개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추가 양적완화 방침을 확인했다. 채권 매입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계획이다.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풀면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날 미 상무부가 밝힌 미국의 8월 무역수지 적자액은 463억5000만 달러로 전월에 비해 8.8% 늘었다. 특히 대중 무역적자는 280억40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미국이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달러화 약세기조를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세를 불리고 있다.
달러화 약세 기조가 갈수록 뚜렷해지자 이에 대한 비판론도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한 고위관료는 "미 연준이 공격적인 양적완화에 나서는 것은 다른 국가의 희생을 대가로 미국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사이먼 데릭 뱅크오브뉴욕(BNY)멜론 수석 외환 투자전략도는 "단기적으로는 달러화 약세가 미 경제의 부양력을 키워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미국이 승자가 될 수 있겠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럽 등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통화당국이 싱가포르달러화의 환율 변동폭을 확대하는 등 세계 각국의 저항도 이어지고 있다. 물가상승 압박을 저지하기 위해 단행한 이 조치는 다른 아시아지역 국가 통화의 강세를 부추겨 각국의 자국 통화 약세 경쟁은 한층 더 심화될 분위기다.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도 미국이 국제 외환시장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EU 관료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이 통화완화적인 경기부양을 통해 자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급불안이 심화하고 있는 글로벌 상품시장도 달러화 약세 여파로 심하게 들썩거리고 있다. 상품시장에서는 대개 달러화로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곧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날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3개월물 구리 선물 가격은 한때 2년래 최고치인 t당 8490 달러를 기록했고 런던귀금속시장(LBM)에서 거래된 금 현물은 온스당 1387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371 달러로 상승폭을 좁혔다.
시장에서는 미 재부부가 이날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환율보고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년마다 나오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지만 보고서는 환율 논쟁을 더 부추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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