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부를 다니던 시절의 공과대학은 여러 면에서 지금과 매우 달랐다. 공대 내 재료공학부에 단 한 분의 여성 교수님(박순자 명예교수)이 계셨을 뿐, 전기전자 관련 4개 학과에는 여성 교수님이 안 계셨다. 내가 속한 학과에는 여성 선배 또한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역할 모델을 삼을 수 있는 여성의 존재가 아예 없었다. 여성 화장실이 두 개 층에 하나씩만 있는 건물이 대부분이었고, 건물의 한쪽 끝 구석에 있었기에 날이 어두워지면 화장실에 가는 일에 두려움을 느꼈다.
여성과 관련된 의제에 대하여 접할 기회 또한 거의 없었다. 남성중심적 문화 속에서 학과나 동아리, 학생회 등에서 알게 모르게 일상적인 배제가 일어나고 있었음에도, 여성학이나 소수자의 인권 관련 분야의 교양 교과목도 없었기에 문제의식을 거의 갖지 못한 채 학부 시절을 보냈다.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후에야 성 평등한 조직문화를 체감하며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이화여대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또한 알게 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9개 나라에 대하여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을 평가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2013년 이후 1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남녀 소득 격차도 31.2%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중 여성의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여전히 성별 격차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대학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우리나라 4년제 여자대학 일곱 곳만을 추려 살펴보면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광주여대 61.2%, 덕성여대 52.5%, 동덕여대 46.7%, 서울여대 51.9%, 성신여대 43.9%, 숙명여대 41.7%, 그리고 이화여대 53.4%이다. 여자대학 일곱 곳의 전체 전임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49.8%로서 남녀 교원의 구성 비율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학교수의 역할 중 봉사는 교육과 연구에 더해 대학교수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로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게 한다. 대학 내 봉사는 교수가 학과장, 학장, 처장, 연구소장 등의 보직을 맡거나 위원회 활동 등을 통하여 학교의 행정 및 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 행정에 여성 보직교수의 참여는 주요 의사결정의 다양성 확보, 인적 자본의 효율적 활용, 성 평등한 문화 조성 등을 통해 대학의 경쟁력 제고와 교육적 효과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남녀공학 대학과 여자대학의 주요 보직자 중 여성의 비율을 비교하여 보자. 교육행정학 연구 논문 '조직 다양성 관점에서 살펴본 대학 보직교수의 인구학적 특성 및 학문적 배경 (권은비 외, 2024)'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주요 40개 대학 주요 보직의 남성 보직교수의 비율은 89.8%, 여성 보직교수의 비율은 10.2%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8.8배 많다. 전체 전임교원 중 여성 비율이 27.9%인 것과 비교하여도 보직교수 중 여성의 비율은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여성 교수가 경험할 수 있는 보직의 종류도 제한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주로 교무, 기획, 연구, 총무 등 ‘인사 및 자원 배분’의 중요한 권한을 갖는 부서에 배치되는 반면, 여성은 학생, 입학, 대외협력 등 ‘돌봄 및 지원’ 부서에 배치된다. 이는 여성학자들이 조직에서도 돌봄과 관련된 역할을 더 많이 맡게 되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을 ‘학문적 가사노동 (academic housework)’이라 일컫는다. 학문적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사회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중시되는 대학에서조차 성에 따라 역할이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4년제 여자대학 일곱 곳만을 추려 살펴보면, 학장과 처장 등의 주요 보직에 있어 적게는 26.7%에서부터 많게는 65.7%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다. 전체 대학의 여성 보직자 비율과 비교하여 여자대학의 여성 보직자 비율이 최소 2.5배 이상 높다. 또한 여자대학에서는 보직 임명에 성별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여성 보직교수들은 다양한 부처를 경험하며 행정가로서 지속적인 리더십을 개발하는 데 제한이 없음을 체감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인구감소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감소는 직접적으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므로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육성과 활용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38년의 역사를 지내오며 26만명이 넘는 여성 인재를 양성하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해왔다. 내가 속한 공학계열의 경우, 1996년 설립된 공과대학과 2023년 설립된 인공지능대학을 합하면 연인원 600명 이상의 여성이 공학사 학위를 받고 사회에 나간다. 국내 어느 주요 대학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여성 공학인을 배출하는 것이다.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은 학부 기준으로 이화여대 출신이 가장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이화여대 출신으로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들을 대부분 많이 만나보았을 것이다.
여자대학은 여학생들이 사회인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경험할 수 있는 여성 중심의 사회이다. 여대에서는 여학생들이나 여성 교수들이 주변인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교육과 행정의 중심에 놓인다. 학업 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여대의 학생들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한다. 남녀공학 대학에서 성에 따른 역할 분담에 따라 남학생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조별 프로젝트 조장, 동아리 대표나 학생회장 등의 리더의 역할 또한 여대에서는 여학생들이 담당한다. 이러한 모든 경험은 여학생들의 태도와 직업적 능력 등에 영향을 미쳐 자신감과 학문적 성취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계 각 나라에서 모여든 다양한 계층, 종교, 민족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 그들과 연대하고 자매애를 쌓는 것 또한 여대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여대는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평등한 조직문화를 실현하고 여성의 권리와 역량을 강화하여 사회 전반의 인권 의식을 고양하는 역할을 한다. 학내 많은 학문 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의제가 중심에 놓이고, 여성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지식의 생산과 실천적 연대로 연결되고, 지속가능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여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대해 큰 소리로 말해도 아무런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여자대학교’라는 공간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논의를 해야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다”고 말한다.
여자대학은 여학생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주도적인 학습 과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성 평등한 조직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여대는 남성중심적 경쟁 모델이 경시해온 가치들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그곳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여자대학의 교육 모델은 여전히 유리천장이 공고한 대한민국 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제50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IEEE Fellow
공학도의 목표가 경쟁자보다 우수하고 빠른 성과창출이 아니라 남녀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거네
그런 논리라면 여성이 많은 가정/교육/음악 등은 남성전용 대학을 세워야 하겠네
남녀펑등의 주장이 단기적으로 맞는 주장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여자가 남자와 직업을 다투고 경력을 관리하느라 여자가 아이를 안낳고 ..인구 소멸로 가고 있습니다.
배운 사람이라면 더 큰 주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시고, 여대같은 작은 문제는 그 하위에서 논하는게 마땅해 보이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