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외신기자들은 대부분 고국으로 돌아가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몇 주간의 휴가를 떠나기 시작한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밤중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정국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면 올해도 연말 분위기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선 윤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 열기가 아직도 뜨거운 가운데 해외 언론은 취재진을 추가로 한국에 보내 정치적 대혼란 사태를 앞다퉈 대서특필 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지금의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어서 CNN 특파원은 가장 핵심적 질문을 던진다. "Who is leading Korea today?" (지금 누가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나요) 김 위원은 "That’s the problem. Officially, He’s still president. But he has no power or non-accountability. Then, If he resigns or impeached, somebody will at least (become) acting president or acting leadership. Now, exactly what you’re saying is right. It’s absence of leadership here" (그게 문제입니다. 공식적으로 그는 아직 대통령이지만, 권한도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만약 그가 사퇴하거나 탄핵되면, 적어도 누군가는 대통령 직무 대행이나 리더십을 맡게 될 것입니다. 지금,정확히 말하신 대로입니다. 여기에는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4일 새벽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군인의 총부리를 잡으며 "부끄럽지도 않냐"며 일갈하는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대변인 (민주당 도봉갑 지역 위원장)의 대담한 모습은 이번 사태의 가장 결정적 장면의 하나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안 대변인이 군인의 무기를 잡고 몸싸움 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 널리 퍼지자 BBC 방송은 그를 찾아가 직접 인터뷰했다. 안 대변인은 BBC에 "총칼을 든 군인들을 보면서 정당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너무 많이 안타깝고 역사의 퇴행을 목도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조금 슬프고 답답하다"고 했다. CNN의 왓슨 선임 특파원도 안 대변인과 인터뷰를 했다. "그 군인이 당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데 무섭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안 대변인은 "사실 저도 사람이니까 좀 두렵고 겁이 났는데, 그래도 그 당시에는 막아야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며 "만약에 계엄군들이 여기를 진입해서 본회의장에 가서 국회의원들의 표결을 막는다면, 계엄은 해제되지 못했을 거고…. 저희가 이렇게 만나지도 못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시대착오적인 계엄이 선포됐다가 6시간 만에 해제된 상황을 두고 열흘 정도가 지났지만 외신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시도 사변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남용하며 수많은 반체제 인사를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며 용공세력으로 몰았던 과거 어두웠던 군사정권 시절의 아픈 기억을 소환시키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거대 야당의 탄핵소추 남발과 예산안 삭감 문제를 질타하다가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고 발표했다. 생방으로 담화를 시청하던 많은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우리의 안보상황이 심각하게 위협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나 하는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는 이젠 잘 알고 있다.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무장 군인과 헬기를 동원시킨 것은 현직 대통령이라 해도 탄핵은 물론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상황이 되었다.
영국 가디언의 전 한국 특파원이자 현재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인 마이클 브린은 필자와의 티 미팅에서 "한국과 같이 안정적인 민주 국가의 리더가 국회를 봉쇄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했다. "만약 북한이 공격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만일 그랬더라도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의외였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신성시 되는데 군인들이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투표를 막으려고 했다는 점은 매우 쇼킹하다"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중형을 받더라도 세계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필자가 외신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 민주화 시위와 정치적 대격변은 해외언론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휴전선을 따라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남북의 대치상황과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판문점에서 가끔 개최되는 군사정전위원회는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이 평양에서 취재 나온 북측 기자들과도 만나 이런저런 궁금한 사항에 대해 비교적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때는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도 큰 차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일부 북측 기자들은 북의 체제가 남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동서 진영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시기에도 줄곧 외신들은 한반도에 '냉전의 마지막 전선' (The Cold War's last frontier)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못 되는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일컫는 급속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지금은 세계 12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도약했다. 산업화는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히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경제력에서 남한의 절대적 우위를 가져왔고 극심했던 민주화의 진통은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독재 체제에서 벗어나게끔 했다. 많은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독재적 군사정권의 프레임에서 탈피해 빠른 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세계의 석학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기반해 이뤄낸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남북한은 분단 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서로 다른 제도 속에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격차가 열 배 이상으로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또 이 과정에서 한국은 어려운 민주화 과정을 거쳤고 민주화 달성 이후 성장 속도를 더 높였고 성장 방식도 더 건강하게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북한과의 격차를 벌이며 지금의 한국이 만들진 것이 법치주의가 잘 지켜지고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건전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 가능했다고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눈은 크게 달라졌다. K-팝 등 우리의 매력적인 대중문화도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 상품 수출 증대로 우리 기업을 살찌우고 있다. 이번 주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상징 무대인 블루 카펫에 섰다. 많은 국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늘어날수록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과 유학생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번 계엄 사태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렵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성공을 했더라면 지금 나라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하기도 두렵다. 의회 권력을 무력화한 독재자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짓밟고 고문과 감금이 판쳤던 과거로 역사는 회귀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수습을 당리당략보다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국정마비 사태가 길어지면 우리 경제는 속절없이 추락할 것이다. 국내외 언론은 14일 예정된 제 2차 윤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분수령으로 주목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불확실성이 길어지는 것이다. 여야 대치가 계속되고, 국민 저항이 확대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저성장과 내수부진에 허덕이는 우리 경제는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지게 되어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 연말 모임까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주머니 사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일반인들보다 더욱 힘들 것이다. 'IMF 때보다 힘들다'라는 말이 장사하는 분들의 입에서 오랫동안 들어봤지만 지금은 더욱 실감이 난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라는 말밖에 전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자가 진정 누구인지 국민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