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글로벌 중추국가는 종언하였다. 친위 쿠데타는 국격을 실추시키는 것은 물론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직무 정지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우리나라는 각국 정상이 참여하는 국제회의에 초대받지 못하는 글로벌 왕따로 전락할 것이다.
친위 쿠데타 시도는 그 자체로 글로벌 중추국가의 자기부정이다.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는 이번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자유’가 35번 언급된 2022년 5월 취임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미국, 코스타리카, 네덜란드, 잠비아와 공동으로 주최한 2023년 3월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한국은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며 전 세계의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노력에 앞장서겠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글로벌 중추국가의 몰락은 한미 관계를 급속히 긴장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확산을 대외정책의 기조로 추진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이다. 한미일 삼자협력의 주창자인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은 5일 윤 대통령이 심각하게 오판했다고 비판하면서 계엄령 선포를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6일 “계엄령 발동과 그러한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도 비상계엄 조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4일 한국 여행에 대해 ‘주의’를 권고하였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5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만나 주한미군 및 가족과 한국 체류 자국민의 생명,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엄령 선포를 사전에 통보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미관계 전문가인 빅터 차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7일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시도할 경우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계엄령 선포 이후 바이든 정부는 이미 예정된 행사와 훈련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12월 3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1차 도상연습(TTX)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 회의는 NCG 창설 이후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해 실시하는 첫 훈련이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7일 이후 한국을 방문하려는 일정을 5일 취소하였다.
윤석열 정부의 붕괴로 한일 관계의 악화도 불가피하다. 이시다 시게루 총리는 5일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이 한국의 국익이라는 신념을 갖고 추진해 왔으며 그런 윤 대통령의 노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지만, 내년 1월 초 계획했던 방한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달 방문할 예정이었던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와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일정을 취소했다. NHK가 9일 발표한 여론조사(6~8일)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가 26%,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다"가 40%였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윤 대통령의 퇴장으로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에 대한 일본의 기대 수준이 낮아진 것이다.
한중 관계에도 비상계엄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정 불간섭을 명분으로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중국은 관련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며 한국의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발언하였다. 그러나 12~15일 한중의원연맹과 회담하기로 한 중·한 우호소조는 10일 방한을 연기하였다. 지난 10월 주중대사로 내정된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도 애매해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김 전 실장이 가진 대통령 측근이라는 장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왕따를 피하기 위해서는 빨리 새로운 안보팀을 구성해야 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비상계엄 심의 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수사를 받아야 한다. 설령 법적 처벌을 면한다고 해도 국무위원으로 정치적 및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새로운 장관이 선임되어야 한다. 국가안보실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책 실패에 대한 추궁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떨어진 국격을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파산선고를 받은 글로벌 중추국가의 대안이 조속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점은 특정 그룹의 전횡이다.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 주요 보직을 독점할 때 군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 생생하게 경험하였다. 안보실에서도 소수의 측근이 인사를 좌지우지함으로써 지난 2년 반 동안에 안보실장이 세 번이나 교체되는데 제1차장은 그대로 있는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견이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과 역효과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와 절차가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실과 행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가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했던 비상경제점검회의와 유사하게 여·야·정 3자가 참여하는 비상외교안보점검회의의 신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 회의가 잘 운영된다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초당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