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 따른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은행의 자금조달도 악화되는 양상이다. 자칫 비상계엄 후폭풍이 장기화되면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고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서 은행이 일순간 유동성 부족을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금융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2.948%로 마감했다. 은행채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반영되며 이달 2일 2.904%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계엄 사태 이후 상승전환해 3%에 바짝 다가섰다.
환율 급등에 따라 외화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기업의 매입외환(해외에서 받을 외화를 은행으로부터 선할인해 받는 여신) 물량이 늘어나고, 대기업 위주로 외화예금을 빼내면서 은행의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다. 파생상품 관련 추가 담보 제공 요구(마진콜)도 유동성 부족의 잠재 요인이다.
아울러 외화 표시 자산이나 해외 출자금 가운데 신용 위험가중자산(RWA) 등이 늘어 금융그룹 전체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자기자본비율이 약 0.01∼0.02%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조달 환경 악화 속 은행들은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하락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았다. 3분기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외화 LCR은 평균 157.3%로 규제수준(80%)을 상회했지만 원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 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으면 유동성 위기가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고 은행이 예금 유치로 돈을 조달하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한국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정기예금은 2%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중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금리(1년 만기)는 3.2~3.22%로 11월 말(3.35~3.42%)과 비교해 상·하단 각각 0.2%포인트, 0.15%포인트 줄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주 비상계엄 충격에 비해 원화 가치나 주가 하락 폭이 작았던 측면이 있다"며 "경제 상황이 가뜩이나 안 좋은데 정치적 충격이 겹치면서 이번 주 탄핵 정국으로 인한 영향이 과다 반영될 가능성이 있어서 경계심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