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發) 중·저가 공세에 국내 제조업이 휘청이고 있다. 국내 기업 10곳 중 7곳이 매출이나 수주에 영향을 받았거나 향후 피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정책이 시행될 경우 중국의 과잉공급물량이 한국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한국 산업 전반이 초유의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어 우려가 크다. 한중자유협정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대중국 통상정책을 강화하는 등 철저한 대비가 시급하다.
한국의 대중수출은 2021년 1629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3년에는 1248억 달러로 하락하고 2024년 중에도 1~9월 중 979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중국 수출은 이미 2013년 1238억 달러를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800억 달러까지 감소해 반도체 제외 무역수지는 2018년 이후 적자를 기록해 오고 있다. 이는 2015년부터 발효된 한중자유무역협정에서 범용기술제품을 대거 양허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값싼 중국 제품들이 한국 시장에 전방위적으로 침투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기업이 저가·물량 공세에 나선 배경은 재고 증가가 중요 변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완제품 재고율은 코로나 기간 소비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22년 4월 20.11%로 크게 증가했으나 그후 과잉 생산 재고를 해외에 저가로 수출하면서 재고율은 2023년 11월 1.68%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중국이 좀처럼 경기 둔화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지난 6월 기준 4.67%로 다시 높아졌다. 저가·물량 공세가 예상되는 배경이다.
그런가 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5년부터 추진해 온 자국 핵심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기술력 면에서도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중국이 이미 전기차와 태양광 등 영역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분야 역량까지 키우고 있다. 이에 미국은 인공지능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당장 한국 삼성전자의 타격이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국영기업의 개입 등 육성정책을 중상주의 정책으로 보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자유무역 체제를 이용만 하고 있다며 지난 트럼프 1기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탈퇴했었다. 이번 2기에 다시 탈퇴하고 대중국 압박을 강하게 밀어붙일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고속철도는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2030년에는 LNG추진선 시장에서도 선두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로봇 등에서도 중국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춰냈다는 점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압박하면 할수록 태양광과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저가 물량공세로 전 세계 경쟁사를 몰아낸 전략이 여러 분야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처럼 시장도 작지 않으면서 중국의 압박에 거의 속수무책인 나라의 산업이 피해가 클 가능성이 있어 한국 기업들은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의 반도체 기업 SMIC는 3나노(10억분의 1미터·작을수록 우수한 공정으로 평가한다) 반도체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글로벌 시장의 테슬라 판매량을 넘어서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높은 기술력에 저렴한 가격까지 앞세운 중국 기업 공세에 글로벌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발 공급과잉 충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공급 과잉이 지속되며 국내 주요 사업 환경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철강과 석유화학, 태양광, 디스플레이, 전기차, 이차전지 등 6개 주요 업종의 수요와 공급 여건이 모두 국내 기업에 불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산을 포함한 제품 과잉 공급이 수요를 큰 폭으로 넘어서면서 가격 하락 등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국내 철강업계가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로 위기를 겪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의 고율 ‘관세장벽’이 실현되면 자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철강 제품이 한국 시장 등 미국을 제외한 시장으로 싼값에 유입될 수 있어 한국산 철강 제품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이 경북 포항 2공장을 셧다운(폐쇄)하기로 한 것은 중국발 과잉 공급과 저가 공세에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불황이 장기화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현대제철은 지난 7월 말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정부에 반덤핑 제소를 제기했다. 이에 산업부에서 조사에 나섰으나 중국의 보복 관세로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실제 제재를 가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전 세계 철강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또 절반 이상을 소비하는 나라다. 하지만 건설경기 부진으로 중국 내 건축자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대규모로 쌓인 재고를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국내 철강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한국 철강사들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3사 합산 1조6501억원)이 전년동기보다 47% 감소했다.
국내 철강사들은 자구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대제철은 지난 13일 직원들에 포항2공장 제강, 압연 생산시설의 가동 중단(셧다운)을 추진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포스코는 저수익 사업으로 분류된 중국 스테인리스강 생산법인 장가항포항불수강 매각을 검토 중이다. 중국 장가항포항불수강은 포스코가 처음으로 해외에 스테인리스 일관 생산설비를 구축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공급 과잉 등 여파로 1699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석유화학 부문은 이미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보다 사업경쟁력 측면에서 우위에 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격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범용 제품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산 80조원 규모의 LG화학은 올해 상반기 석유화학 사업에서 올린 영업이익이 단 12억원에 불과하다. 앞서 2022년 석유화학 사업의 영업이익 1조원에 육박했던 것과 사뭇 비교된다.
무차입 거인 롯데의 위기설이 나오고 있는 배경도 롯데케미칼의 무모한 몸집 불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09년에 매출 40조 비전을 설계하고 NCC(나프타분해시설)를 무리하게 확장했는데 중국의 물량 공세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공격적으로 NCC를 증설하면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태양광 역시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지난해 중국의 모듈 생산능력이 850GW(기가와트)로 올해 글로벌 태양광 설치용량 추정치 600GW를 훌쩍 넘어서며 공급과잉 상태다. 전기차와 이차전지도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 패권 장악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풀며 관련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여파로 생산량이 늘면서 수출도 급증했다. 이차전지도 중국 업체의 해외 진출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애플 아이폰16 시리즈의 카메라모듈 공급망에 진입하면서 LG이노텍의 납품 물량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애플이 원가 절감을 위해 공급처를 다변화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공급 비중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점유율 방어에 나선 LG이노텍이 제품 판매 가격을 낮출 경우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K-배터리 골든타임은 '3년'에 불과해 늦으면 중국에 먹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저가 공세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았고, 여기에 차세대로 꼽히는 하이니켈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역시 2026년부터 자체 기술만으로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중국은 정부 전폭 지원에 힘입어 고공 성장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톱10에 중국 기업 4곳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전폭적인 지원과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따라잡히는 건 시간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중국의 저가 공세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원 정책으로 국내 산업 보호 조치(37.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연구개발(R&D) 지원 확대(25.1%), 신규시장 개척 지원(15.9%), 무역금융 지원 확대(12.5%), 자유무역협정(FTA) 활용 지원(6.3%)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글로벌 통상 분쟁이 갈수록 확대되는 상황에서 반덤핑 제소 등 정부의 대응 기조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 기업이 해외 수입품에 대해 신청한 반덤핑 제소 건수가 통산 연간 5~8건인 데 비해 올해 상반기에만 6건이 신청됐다.
중국은 대규모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이제는 북미와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자국 시장 밖에서도 한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올해 1~9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 1위 기업은 중국 CATL이다. CATL은 7.4%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 26.3%를 차지했다. 반면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2.6%p 하락한 46.0%를 기록했다.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국내 첨단 기술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2018년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능력에서 중국에 추월당한 한국의 디스플레이 부문도 위기다. 최근 중국 업체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영역에서도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부진한 LCD 업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향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중국의 OLED 비중 확대는 우려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LG 텃밭인 한국 가전 시장도 중국 가전 브랜드에 잠식되고 있다. 10여 년 전 한국 가전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는 “싼 맛에 쓰는 제품”이었다. 3~4년 전엔 샤오미 선풍기, 이른바 ‘차이슨(차이나+다이슨)’으로 불리는 무선 청소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품질 수준이 한국산에 근접한 제품들이 출시되더니, 최근엔 오히려 한국 제품보다 더 비싼 중국 브랜드가 팔려 나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중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한국 시장 공략은 결국 성장률 둔화와 주가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가지수가 7월 이후 5개월 연속 전월 대비 하락을 이어갔다. 국내 증시 최장 하락 기록은 2000년 IT(정보통신) 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세워진 6개월 연속이다. 그때는 세계 증시와 동반 하락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 증시는 호황인데, 유독 한국 증시만 바닥을 헤매고 있다.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세계 최저의 주주 환원율, 지지부진한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 프로그램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 원인은 기업 경쟁력 저하와 그로 인한 경제 성장률 둔화에 있다.
중국의 위협은 이제 산업 전 분야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중국 8대 주력 산업의 최근 10년간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을 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무선통신기기·선박·자동차·철강 등의 7개 부문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 철강·석유화학은 중국산 저가 공세 탓에 생존 위기에 내몰렸고, 한때 중국 시장에서 두 자릿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던 자동차·휴대폰은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중국은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현재 중국 대비 기술 우위를 지니고 있는 산업은 반도체·선박 정도다. 미국의 대중국 HBM 수출규제도 문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일부 사양이 낮은 HBM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며 “매출 비율이 높지 않지만, 타격은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테무, 쉬인 등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들이 면세 제도 허점을 이용해 저가 제품을 쏟아내면서 관련 중소기업들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부터 적극 한국 공세에 나선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은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을 제치고 MAU(월간활성이용자수) 상위권에 올라 장기간 유지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올 초 향후 3년간 한국 시장에 11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히면서 국내 이커머스 사업자들을 긴장하게 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은 이전과 양상이 다르다. 중국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도 고성장기에는 자국 내에서 상당 부분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동산 침체 등의 여파로 수요가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과거엔 업종별로 공급 과잉 시기가 달랐지만 지금은 대부분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빚어지고 있다.
중국이 역사상 최대 규모인 1조 달러의 무역흑자를 향해 질주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으로 글로벌 무역질서가 격변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발표된 무역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무역흑자는 2024년 10월까지 총 7850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6%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무역흑자가 내수 부진 속에서 달성됐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가 회복되지 않자 중국 기업들은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의 무역 영향력 확대는 글로벌 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170개 이상의 시장에서 중국의 수출이 증가하며, 이는 기존 서방 중심의 국제 무역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된다. 대미 무역흑자는 4.4% 증가했으며, 유럽연합(EU)과의 무역흑자도 10%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아세안 국가에 대한 수출은 36%나 급증하며,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중국이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중국의 수출 드라이브 강화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부품 등이 직접적인 경쟁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미·중 무역갈등 심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와 중국의 자국 기업 보호정책 사이에서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경기 부진과 밀어내기식 수출 여파로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신행정부에서 모든 국가에 일괄 관세 부과 방안이 실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상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정부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특히 중국의 파상공세로 한국 산업기반이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역임 ▷고려대 경제학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