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이슬람포비아 극복 못한다면 …히잡쓴 아미 언제든 등 돌릴수 있다

2024-11-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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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포비아 극복 못한다면 한류의 새로운 메카 중동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2019년 10월 BTS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공연은 가장 보수적이었던 이슬람 종주국의 위상을 뒤흔드는 개혁·개방의 신호탄이 되었다.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유로운 만남이 제한되고,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동행 없이 외출도 자유롭지 않던 사우디 젊은 여성들에게 BTS 공연 참가는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다. 히잡에 검은 외투 아바야를 걸치고 일부는 얼굴까지 가린 사우디의 여성 아미 3만명은 입장이 허용된 축구 경기장 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펄쩍펄적 뛰면서 팬심을 맘껏 발산했다. 2007년 학생 수 3만4000명을 가진 세계 최대 여대인 프린세스 알 누리 대학이 설립되고, 2018년 30여 년의 사회적 논쟁을 딛고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한 데 이어 또 다른 파격적인 변화의 물결이다. 사우디 왕립대학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30년간 지지부진했던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시민사회 개혁을 BTS가 앞당겨 주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한국의 젊은 아이돌이 국가 브랜드 가치와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한 낙후된 사회에 변화의 빛을 던져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끌어가는 놀라운 역할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한류는 중동 전역에서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초 <겨울연가> <가을동화>와 같은 인기 드라마 수출에 이어 2006년에는 인기 사극 드라마 <대장금>이 이란에서 최고 시청률 86%를 기록하면서 전무후무한 한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실제로 대장금이 방영되던 시간에 테헤란 시내 밤풍경을 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식당과 카페, 번화가 가전제품 전시관 앞에는 오로지 대장금을 보는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길거리에는 거의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다. 대장금의 슈퍼스타 이영애씨가 한양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내가 그 대학 교수라는 이유만으로 최고의 특별대접을 받았다. 식당에서는 밥값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대장금 신드롬의 배경을 문화적으로 분석해보면 보면 궁궐 내에서 온갖 모함과 중상모략에 시달리면서도 최고 상궁 자리에 오르는 대장금의 드라마틱한 휴먼스토리가 근대 서구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수많은 침탈과 고통을 당해왔던 중동 이슬람인들이 겪은 고통과 너무 닮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장금이 던져주는 성공과 희망의 메시지에도 그들은 위안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대장금을 보면서 ‘이것은 바로 우리의 스토리 같아’라고 입을 모은다. 더욱이 우리 역사극이 주는 권선징악 구도, 즉 주인공이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하는 줄거리 전개가 단순하고, 대장금과 궁녀들이 입는 노출이 거의 없는 궁중의상도 이슬람 여성들의 히잡이나 종교적 미풍양속에 꼭 맞아떨어진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어디서나 계곡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나무와 꽃이 만발한 사계절의 경치에도 그들은 매료당한다. 알라가 코란에서 약속하신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가 바로 저런 곳이 아닌가 그들은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아랍 학자들은 고대 신라를 동방의 유토피아로 묘사하면서 극찬해 왔다.
 
그들은 폐허에서 출발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과 국가적 위상을 확보한 코리아의 성장 비결에 큰 관심을 보였고, 역사적 트라우마와 적대적 인식이 깔려 있는 서구문화를 대신한 새로운 대안 장르로 한국 문화의 모든 것은 수용 가능한 매력으로 자리매김했다. K-팝으로 시작되어 드라마, 음식, 영화, 게임, 화장품, 메디컬, 제약 등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이제 세계는 K-컬처라는 새로운 중심 장르에 몰입하고 있다.
 
이번 달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연이어 K-컬처 성공 배경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고 현지 전문가들과 폭넓은 의견 교환을 했다.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서고, 지역적으로도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에 머물지 않고 중앙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유럽, 북미까지 강타하는 현상에는 한국 문화가 태생적으로 긴 역사를 통해 축적된 글로벌 유전자를 강하게 머금고 있다는 추론이었다. 이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강연이었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한계와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은 항상 깨어 있는 긴장된 상태로 동시대를 선도하던 첨단 기술과 정보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에 처해 있었다. 예를 들면 9세기 통일신라 수도 경주는 이웃 국가들과의 교역과 문화 교류는 물론 동남아시아, 북방 아시아 멀리 아랍·페르시아 문화까지를 받아들여 융합해서 자기화하는 탁월한 순발력과 문화용광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 말까지도 한반도는 자유분방하고 개방된 사회를 지향했다. 여성들이 제사를 모실 정도로 여권도 앞서 있었고, 팔관회나 연등회, 쌍화점이란 고려가사에서 보듯이 국제적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와 한국 문화를 풍성하게 했다. 그러나 신유교주의가 국가 이데올로기로 수용되고 이질적인 풍습을 철폐하라는 1427년 세종 칙령 이후 조선 사회는 점차 개혁·개방보다는 고립과 보수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18세기 온 세상이 새로운 개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고,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 인권혁명, 미국의 독립, 일제의 메이지 유신 등으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할 때, 한국은 수구파와 개화파 간 격렬한 논쟁으로 이 도도한 글로벌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그 후로도 한국인들은 해방 정국의 혼란과 한국 전쟁, 가난 탈피와 경제성장 몰입 정책으로 일상의 삶에 허덕여왔다. 결론적으로 한국 문화의 원형에는 역사 속에서 축적된 글로벌 요소가 짙게 깔려 있고 그것이 이념적 강요와 정책의 실패로 잠시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K-컬처의 특징과 성공 요인을 몇 가지로 요약해 보자.

첫째는 한국 문화의 원형질을 단단히 바탕에 깔면서 다른 문화와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잡종 강세의 새로운 글로벌 가치를 선도하는 콘텐츠의 창조성에 있다고 보인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과 재해석이 중요한 공감 요소로 작동했다.

둘째는 IT강국으로서 한국이 갖고 있는 세계 최첨단 기술을 문화예술과 접목하는 데 성공한 점이다.

셋째는 2000년대 이후 고난의 시기를 겪어 보지 않으면서 주눅 들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문화역동성이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세상을 호흡하고 뛰어난 외국어를 구사하면서 한국적 메시지를 글로벌 메시지로 재창조하는 매력적인 문화상품을 선보였다.

넷째는 혹독한 자기 훈련과 심사의 공정성이다. 수천 개의 아이돌 그룹이 밤낮으로 연습하고, 그들의 보석 같은 숨은 능력을 간파한 대형 기획사들의 체계적인 훈련과 오디션 과정에서의 공정한 심사 등도 빼놓을 수 없다. BTC라는 탁월한 글로벌 스타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이브라는 거대 기획사의 800여 종업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도 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동경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에는 중동을 갈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을 때가 많다. 그들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K-팝과 드라마를 통해 배웠다는 한국말 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한국 유학을 준비하고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도 나날이 늘어간다. 한국 문화 교육기관인 세종학당 입학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급기야 나라마다 사설 한국어학당이 판치고 있다.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팬덤들의 카페는 수백 개에 달하고 그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중동에서 새로운 한국 문화 지도를 그리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최근 감지되는 한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중동 사람들은 한류에 대해 ‘지나치게 상업적’(28.9%), ‘획일적이고 식상’(28.0%), ‘자극적이고 선정적’(12.6%)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중동 맞춤형 K-컬처의 개발과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일 것이다. 팝과 드라마, 영화 중심에서 한방, 메디컬, 농업, 스포츠, 예술 분야에서의 협력과 진출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특히 한류 확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될 중요한 요소는 자칫 문화식민지 전략이라는 이미지나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지 않도록 세심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류를 통한 두 문화권의 진정한 소통과 협력을 추구한다면 국내 K-컬처에서 다루는 중동·이슬람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왜곡 문제도 매우 신중하게 걸러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몇 해 전 방영된 <죽어야 사는 남자> <킹더랜드> 같은 드라마에서 히잡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아랍 복장에 와인을 마시는 몰상식한 장면들이 연출되어 중동인들뿐만 아니라 양식 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동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나 잠재적 범죄자로 등장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고질적인 문화상업주의 영향으로 아직도 우리의 인식 속에는 긍정적이고 따뜻함보다는 이슬람포비아와 경계심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중동의 한 국내 특파원이 대구의 모스크 건립 반대 시위나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배척 서명운동을 보도하면서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개최, 연이은 한류 열풍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던 코리아 국가 브랜드가 이번 사건으로 크게 손상되었다’는 고언을 가볍게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인구 20억명에 57개 이슬람 국가를 거느린 지구촌 4분의 1 문화권에 대한 접근과 전략도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과 국익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데 우리가 그들을 멀리한다면 절정에 이른 한류 열풍과 경제적 이익도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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