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1년… '중동의 새판짜기' 시나리오

2024-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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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10월 7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1년을 끌었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주도의 새판짜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중동의 두 강국인 이스라엘과 이란은 전면전을 불사하는 직접 대결국면으로 유기가 폭등하고 있고, 핵 보유국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첨단 무기와 정보력으로 주변의 친이란 위협세력들을 하나씩 궤멸해나가고 있다. 미국은 중재자 역할 대신 이스라엘을 향한 천문학적인 비용의 군사원조를 계속하고 있다. 적대적 지도자들을 겨냥한 표적 살인과 전쟁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민간인 살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휴전이나 종전노력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유엔 총회 권고안,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조차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중동의 이슬람국가들도 종교나 이념은 한갓 액세서리에 불과하고 각자도생 전략으로 돌아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이집트 등은 노골적으로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고, 중동의 유일한 군사강국인 튀르키예만이 외로이 초강경 이스라엘 비난 성명을 내보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미국도 11월 대선 국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스라엘의 강경 침략정책에 별수 없이 동조하는 형국이다.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파워 때문에 반이스라엘 정책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기 힘들고, 중동에서의 미국 이익과 합치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소위 ‘50년 만의 중동의 신질서’가 어느 정도 현실화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일이지만, 이번 전쟁 이후 전혀 다른 중동의 권력지도가 그려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국제사회의 휴전안과 평화 노력은 닫혀버리고 이스라엘 강경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 지구 점령에 이어 레바논의 헤지볼라, 예멘의 후티, 시리아의 시이파 민병대,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세력들인 카타이브 헤지볼라와 하라카트 알 누자바 등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동시다발적으로 감행하고 있다. 모두가 소위 친이란 ‘저항의 축’ 핵심 군사조직들이다. 급기야 실질적 배후세력인 이란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직접 공격 공언으로 온 세계가 숨죽여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는 하마스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자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암살당하고, 저항의 축을 진두지휘하던 헤지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사령관 등에 대한 표적 사살 등으로 극도의 모욕감과 비등하는 국내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란이 지난 10월 1일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180여 발의 미사일 직접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팍스 아메리카 시대 미국의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이행되는 과도기에서 중동에서 벌어지는 통제 불능의 혼란양상이다. 짧게는 중동 원유가 필요없는 미국이 탈중동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 극우정권이 획책하는 안보자산 확장과 일방적 패권정책의 불행한 후유증이다. 국제사회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레드라인을 훌쩍 넘긴 이스라엘 우파 정권은 이 참에 팔레스타인 점령지를 실효적 지배상태로 바꾸고, 헤지볼라를 필두로 시리아와 이라크의 친이란 거점 군사시설들을 와해시켜 나가고 있다. ‘중동의 새판’을 공공연히 언급하면서 급기야 모든 위협의 근원이라고 보는 이란을 전쟁으로 끌어들여 그들을 무력화시키려는 무모한 도발을 시작했다. 베냐민 네타냐후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가 1996년 첫 총리 취임 이후 무려 28년간 이스라엘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유효한 통제수단이었던 유엔의 무력화와 ‘영혼의 동맹’관계인 미국의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군사지원, 이슬람 세계의 분열이 그 배경이다.

그 결과 전장이 아닌 인구 밀집 대도시를 폭격하면서 매일처럼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나간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만 해도 지난 1년간 약 4만2000명의 민간인 사망자 가운데 7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들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그 보다 몇배 많은 부상자와 국토의 80%가 초토화된 상황은 물론, 눈앞에서 가족들을 잃은 살아남은 자들의 트라우마와 또 복수심에 불타는 집단분노는 몇 세대가 지나고 지나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 21세기가 한참이나 지난 문명세계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국제사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사실상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침공과 레바논 침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국경을 넘어 지상군을 투입하고, 민간인 밀집 지역을 무차별 폭격하는 야만 행위에 유엔이나 국제사법 재판소는 물론 유럽의 많은 국가들도 이를 전쟁보다는 학살로 표현하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갈란트 국방장관 등을 하마스 지도부와 함께 전범으로 기소하기에 이르렀어도 이스라엘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 군사조직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 빌미가 되었다. 명백한 잘못이다. 17년간의 집단감옥과 같은 열악한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억울하더라도,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고 인질로 잡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테러행위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조금도 동정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지난 10월의 하마스 공격 이전에 17년 동안만 해도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과 표적 공격으로 인해 사망한 가자지구의 민간인 숫자가 유엔 통계로 보더라도 6000여 명에 달한다. 정규군에 의한 공권력의 사용이라고 강변하지만, 국제법을 어겨가며 남의 나라의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남발하는 무차별 공격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국가테러다. 그런데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나갈 때 국제사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서구 외신에서는 보도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일쑤였다. 이런 점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본토공격이 사태의 발단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되어 온 분리장벽을 통한 봉쇄와 물과 전기가 차단당하는 생존권 위협에 대한 저항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서안지구마저 완전 통제한 이스라엘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지국 안보 최우선을 내세우며 전격적으로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레바논 남부의 헤지볼라 세력을 궤멸하기 위해서다. 헤지볼라도 레바논 내 불법 무장정파라기보다는 레바논 정부와의 연합 형태로 레바논 남쪽 국경 안보의 상당부분을 책임지는 군사조직이고, 레바논 의회에 국회의원을 포진하면서 사실상 레바논 통치권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다. 레바논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마론파가,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들은 수니파와 시아파가 각각 총리와 국회의장을 맡고 있다. 시아파 세력의 핵심이 헤지볼라인 셈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에는 이스라엘에 강제점령 당하고 있는 세파 팜스와 일부 영토의 반환을 둘러싸고 그동안 분쟁이 계속되어 왔다.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저항 조직들이 레바논 남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점도 이스라엘로서는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헤지볼라는 이란의 전폭적인 군사지원을 바탕으로 현재 레바논 정규군보다도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군대조직으로 급성장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석유가 필요없는 미국이 탈중동을 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선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서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과 경제제재 해소가 실현되는 것을 악몽에 가까운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일관된 요청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헤지볼라에 대한 궤멸 전쟁을 선포하고, 그 배후세력인 이란까지 전쟁에 끌어들여 적의 타격 능력을 최소화 하려는 정치-군사적인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평화와 종전을 요구하는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안보를 위한 전쟁을 계속할 것이며, 이란까지도 공격 목표로 삼겠다’고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배경이다. 제재로 인한 자국 내의 경제적 고통과 이스라엘과의 승산 없는 무력 충돌을 원치 않는 이란도 최대의 딜레마에 빠졌다. 가장 중요한 대이스라엘 전략과 저항의 축의 핵심인 헤지볼라가 궤멸당하는 상황을 가만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전쟁 확대 시나리오를 억제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이란이 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어 보인다. 당장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전 세계 저항 세력들의 헤지볼라 지원 총동원령을 내렸지만,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헤지볼라 측에서 효율적인 반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물론 지금까지 국제분쟁의 최종 해결사는 미국이 그 역할을 담당해 욌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어떤 후보도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하면서 막강한 유대인 표심과 언론 파워, 선거자금의 흐름을 끌어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적어도 침묵하거나 원론적인 레토릭만 남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은 겉으로는 이스라엘 통제가 여의치 않고, 자신들은 헤지볼라나 이란의 직접 공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기하급수적인 공격용 군사원조를 계속하는 이중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공격용 살상무기는 200억 달러에 달하고 최근 몇 달 사이만 해도 65억 달러 상당의 무기가 제공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하늘의 사령탑이라 불리는 신예 F-35 스텔스 50대 중 이미 30대가 실전 배치되어 미국 바깥에서 처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초정밀 첨단장비와 도감청 레이다에 의한 목표물 탐지로 공격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종전과 평화를 내세우면서 가공할 민간인 살상무기를 제공하는 국제정치의 추악한 이면을 이번 전쟁을 통해서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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