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로 물가가 오르면 미국 금리 인하 시계는 더 느리게 움직이게 된다. 간신히 잡혀 가던 국내 소비자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 금리 인하 지연은 달러 강세 요인이라 원·달러 환율 관리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대선 개표가 진행된 6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제45대, 그리고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게 해준 미국민에 감사하고 싶다"며 승리를 공식 선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돌아오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리스크도 함께 증폭되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재선 도전 공약 모음집 '어젠다 47'을 통해 10% 수준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무역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한국의 자동차와 부품, 반도체 산업 등을 지목했다. 우리나라도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미 수출은 1년 전보다 3.4% 늘어난 104억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은 59억7300만 달러에 그치면서 무역수지는 44억3000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무역수지가 5억7000만 달러 늘어났다. 대미 무역흑자는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보편 관세가 적용되면 대미 수출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편 관세 부과 시 한국의 총수출은 222억~448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미 수출 감소분을 다른 국가 수출로 상쇄하지 못하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67% 쪼그라들 수 있다.
정형곤 KIEP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편 관세 적용을 강조해온 만큼 통상 이슈 부분에서 큰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무역흑자 규모가 큰 자동차 부분에서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환율도 흔들릴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재정 지출 확대를 약속해왔다. 확장 재정 추진으로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국채 금리가 오르고 이는 달러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고조되자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 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7.6원 오른 1396.2원으로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2년 만에 1400원을 넘어설 공산이 커진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날 외환당국이 개입해 1400원선 돌파를 저지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후 환율이 1400원을 뚫을 가능성이 있다. 엔·달러 환율도 153엔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환율 변동성 확대는 안정세를 찾아가던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환율 상승으로 원유 등 수입물가가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
고율 관세 등 여파로 미국 내 물가가 올라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지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 폭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환율이 올라 물가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면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게 될 것"이라며 "물가에 대한 불확실성도 함께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