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는 지난 1일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의 인적 왕래를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슬로바키아·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아이슬란드·안도라·모나코·리히텐슈타인, 한국 등 9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내년 12월 31일까지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8일부터 사업이나 관광, 친척 방문을 위해 중국에 가는 한국 일반 여권 소지자들은 최대 15일까지 비자 없이 중국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이는 중국이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3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 무비자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다. 외교 관례상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양국이 협정을 맺어 이뤄진다. 한국이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비자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주도적으로 일방적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것은 미국 대선이 임박하고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 움직임을 보이는 등 국제 정세가 복잡다단해진 가운데, 중국이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임과 동시에,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국인 관광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관광이 침체되고 외국인 투자마저 줄자 지난해 11월부터 유럽·동남아 중심으로 일방적 무비자 대상 국가를 늘려왔다. 중국의 이날 발표로 일방적 무비자 대상 국가는 29개국으로 늘었다. 미국·일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울러 내년 초 미국 새 대통령 취임 후 미·중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으로선 한국 정부에 주도적으로 우호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 개선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있다.
그간 막혀 있던 양국 관계는 지난 5월 조태열 외교장관의 방중과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물꼬를 트면서 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타고 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신임 주중대사로 중국 경제 협력 경험이 풍부한 김대기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전격 내정한 것에 대해 중국 외교가에선 "윤 대통령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가능성까지 흘러나오는 시점에 한·중 양국이 서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며 우호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자오이헤이 상하이 사회과학원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베이징일보에 "중·한 양국은 무역·인적 교류가 빈번한 가까운 이웃으로, 한국에 대한 무비자 정책은 매우 필요한 조치"라며 "이는 한국인의 중국 관광과 비즈니스에 더 큰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중국은 1년 전부터 유럽·동남아 국가에 대해 무비자 조치를 시행했다"며 "이제야 한국을 무비자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그동안 한·중관계가 냉랭했기 때문"이라고도 전했다. 자오 연구원은 이번 조치가 한·중 간 인적 교류를 촉진하고, 양 국민 간 우호 정서를 높이며, 특히 청년층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지 여행 항공업계는 이번 무비자 조치를 전격 반기는 분위기다. 중국의 무비자 정책 발표 다음날인 2일 베이징 현지의 한 인바운드 여행사는 "반나절 만에 한국 고객으로부터 몇십 통의 문의전화가 쏟아졌다"며 한국인의 중국 관광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