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첫 번째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우리가 생각하던 고성이나 난타전 없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릴 일도, 금융권이 한숨 쉬거나 마음 졸일 일도 줄었다. 우리 정치권이 그만큼 선진화된 것일까. 속사정을 살펴보면 이런 변화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보통 의원실에서는 국감 전후 보름 정도를 '집중기간'으로 삼고 피감기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토해내기 바쁘다. 의원실에 따라 하루에 자료만 서너 건 배포되기도 한다. 쏟아지는 데이터에 언론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상임위원회 혹은 정부부처별로 국감 TF를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 화제가 될 만한 자료는 사실상 없었고 눈에 띄는 증인은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유일했다. 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손태승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해 고개를 숙이고, 자회사 임원에 대한 회장의 인사권을 내려놓는 등 강도 높은 쇄신책을 발표했다. 이마저도 의원들의 송곳 질문 없이 예상가능한 수준에서 진행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머지 출석이 예고된 주요 증인들은 대거 빠져나갔다. NH농협은행은 올해 공시된 금융사고만 5건에 달하고 이 중 하나는 국감 하루 전날 공시됐다. 금융감독원에서는 농협은행의 내부통제 실패 원인으로 농협중앙회·농협금융지주와 연결된 인사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석용 농협은행장은 금융위원회 국감 증인에서 제외됐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도 17일 금감원 불법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신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출석 직전 국감장 출입을 피했다. 24일 금융당국 종합감사에 출석할 증인은 CEO급에서 부책임자급으로 격하됐다. 국감 전 굵직한 인사들에 대해 증인 채택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치고 실질적인 결과물은 없는 셈이다.
가계부채와 내부통제 등 주요 현안도 기존 내용을 되풀이하거나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가상자산, 핀테크 등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없어 아예 관심에서 벗어났다. 국감 초반 맹공을 예고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거론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사실상 맹탕에 그쳤다. 만반의 준비를 해도 부족한 상황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총알' 하나 없었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정무위원이 초선 의원으로 배치된 영향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금융권 경영진 출신이 활약했던 21대와 비교해 22대 정무위는 20명 중 9명이 초선 의원으로 구성됐다.
물론 기업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을 상대로 '망신 주기', '병풍 세우기'를 하는 국감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모적 이슈나 불필요한 정쟁의 중심이 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국감 본연의 역할에는 충실해야 한다. 국회는 입법 기능 외에도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각 상임위는 △관련 서류 제출 요구 △증인·감정인·참고인 출석 요구 △검증 △청문회 개최를 할 수 있고 누구든지 이에 협조해야 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두 차례 금융당국 국감에서 정무위원들은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산적한 국가적·사회적 현안과 난맥상인 국정 어젠다를 감안하면 이번 국감은 특히 중요하다.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남아 있다. 24일 종감에서만큼은 정무위가 국감의 본질을 바로 보고 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