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과 인공지능(AI) 혁명에 뒤처진 '전 반도체 세계 1위' 인텔이 '모바일 칩 강자' 퀄컴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관계자들을 인용해 2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만 각국의 반독점 심사 등 각종 난관이 산적한 가운데 실제 인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퀄컴은 인텔 측에 인수 의사를 전달한 가운데, 필요 시 인텔의 일부 자산 및 사업부를 별도로 매각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퀄컴은 시총이 1880억 달러(약 250조원)로 인텔(약 930억 달러)의 2배 수준이다. 다만 퀄컴이 아직 인텔에 공식 제안을 한 것은 아니라고 뉴욕타임스(NYT)가 한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는 정보기술(IT)업계가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반도체 대기업들 간에 전해진 소식이다. 특히 생성형 AI 기능이 점차 PC와 스마트폰까지 보급되고 있는 가운데 '현 반도체 세계 1위' 엔비디아가 호시탐탐 PC 및 모바일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양사 모두 안방이 불안한 상태이다.
WSJ은 "최근 퀄컴의 인텔 인수 제안 소식은 인텔의 56년 역사 중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의 취약성을 보여준다"며 "(겔싱어) CEO가 AI에 대한 관심의 폭발적 상승으로 인해 칩 수요가 경쟁업체 엔비디아가 생산하는 종류의 칩 중심으로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값비싼 (파운드리) 턴어라운드 전략을 추진하면서 인텔의 상황이 악화됐다"고 평했다.
글로벌 독립 투자 리서치 기관인 CFRA리서치의 안젤로 지노 연구원은 "지난 2~3년간 AI로의 전환이 그들(인텔)의 관에 못을 박은 것이었다"며 "그들은 걸맞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해 모바일 칩 시장의 강자로 군림해 온 퀄컴은 실적이 꾸준히 호조를 보이고 있고, 주가 역시 올해 들어 20%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퀄컴 역시 AI 혁명 속에 사업 다각화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인텔을 인수할 경우 PC와 서버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또한 팹리스(생산 공장이 없는 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인 퀄컴 입장에서는 인텔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퀄컴의 인텔 인수가 성사된다면 반도체업계 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초대형 인수·합병(M&A)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퀄컴의 인텔 인수가 진행되기 까지는 각국, 특히 기술 경쟁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의 반독점 심사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CNBC는 지난 2018년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업체 NXP세미콘덕터 인수건 및 2022년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건 등이 미, 중 반독점 당국의 거부로 실패한 것을 지적하며 "인수건은 반독점 및 안보 문제가 얽혀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인수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아성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엔비디아는 AI 학습과 추론 성능을 향상시켜주는 칩인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 퀄컴이 인텔을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패니는 "이들 모두는 공통의 문제, 곧 엔비디아에 대한 해결책이 부재하다"며 "양사는 지난 수년간 노력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의 시장 장악력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고 평했다.
퀄컴과 인텔 주식 모두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자산운용사 가벨리펀드의 헨디 수산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 투자전문매체 배런스에 퀄컴이 이미 PC 시장에서 인텔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퀄컴은 인텔의 모든 문제를 물려 받게 될 것"이라며 실제적으로 인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