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출마 후 첫 심층 인터뷰에서 당선 시 공화당 인사를 포함하는 등 본인의 포용적인 국정 비전을 소개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밤 방송된 CNN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결정들을 할 때에 테이블에 다른 시각과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게 중요하다"며 "공화당 출신의 내각 구성원이 있으면 미국 국민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특별히 임명하기로 염두에 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2일 민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 "나는 모든 미국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서약한 바 있다. 대통령이 내각에 상대 정당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행이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한 지난 8년 동안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어 "내 최고 우선순위 중 하나는 중산층을 지원하고 강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에 취임하면 취임 첫날 중산층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첫날 "기회 경제"(opportunity economy)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시행하겠다고 거듭 언급하며 그 계획에는 자녀 세액공제 확대, 저렴한 주택 공급, 바가지 가격(price gouging) 대응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왜 이런 정책을 부통령으로 재임한 지난 3년 반 동안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침체한 경제를 먼저 회복해야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또한 해리스 부통령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돼 있는, 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 파쇄법(fracking·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불과 4년 전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을 때 환경훼손 우려 때문에 프래킹을 금지하겠다고 했었다. 그는 왜 입장을 바꿨냐는 질문에 "내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다"고만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중요한 문제라면서 프래킹을 금지하지 않고도 청정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이민 문제와 관련, 여전히 불법 입국을 범죄로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국경을 불법으로 넘는 사람들에 대응하는 법들이 있으며 이런 법은 준수하고 집행해야 하며 (어길 경우)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고 답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외교 현안 중 중동 문제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와 비슷한 기조를 이어갈 뜻을 나타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냐'는 질문에는 "이스라엘의 방어에 대한 내 약속은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그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됐고 우리는 (휴전) 합의를 타결해야 한다"면서 "이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안전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안보와 자기 결정권, 존엄을 보장하는 '두 국가 해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길게 대응하지 않고 "늘 같은 오래된 지겨운 각본이다"라고만 비판했으며 바로 "다음 질문 부탁한다"며 넘어갔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전미흑인언론인협회(NABJ) 행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자신을 인도계로만 내세우다가 몇 년 전 갑자기 흑인이 됐다고 주장하면서 "난 모르겠다. 그녀는 인도계냐 흑인이냐"라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당선되면 여성이자 흑인 여성으로서 최초로 대통령이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질문받고서 "난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인종과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을 위해 대통령직을 맡을 최적임자라고 믿기 때문에 선거를 뛰고 있다"고 답했다.
이날 인터뷰는 진행자 발언을 제외하면 약 27분간 진행됐다. '심층'인터뷰로 홍보가 된 이번 인터뷰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약점을 보인 외교, 이민 관련 상세한 답변을 듣긴 어려웠다. 공화당으로부터 해리스 부통령이 취약하다는 공격을 받는 외교 분야 관련 질문도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게 전부였다. 아울러 해리스가 바이든과 어떻게 정책적 차별점을 내세울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지적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이날 인터뷰에는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도 함께했다. 월즈 주지사는 유세 연설 때 목소리 톤을 높이고 군중을 독려하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지만, 이날 인터뷰에선 존재감이 잠잠했다. 인터뷰 초반부에는 그가 8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점을 두고 "이날 꼭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이 해리스라는 점을 월즈도 알았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주방위군 출신인 월즈 주지사는 2018년 주지사 선거 때 총기 규제를 주장하면서 "내가 전쟁에서 소지했던 그런 전쟁 무기"라는 표현을 써 마치 자신이 실제 전투에 투입됐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질문받았다. 그는 당시 상황이 학교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고 총격당한 아이들에 대해 말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다는 취지로 해명하면서 영어 교사인 아내 그웬이 "내 문법이 늘 정확하지는 않다"고 지적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그웬이 아이를 갖기 위해 받은 난임치료가 실제 자궁내 정자주입(IUI·인공수정)인데 체외인공수정(IVF)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기록을 안다"면서 "난 교내 총기가 됐든 생식권 보호가 됐든 내가 열정적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포기 선언에 앞서 본인에게 후보직을 제안하던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화를 걸었던 일요일에 해리스는 조카들과 퍼즐 놀이를 하고 팬케이크를 먹으며 쉬고 있었다. 사퇴 결정에 대해 "진심이냐"고 물었을 정도로 당황했던 해리스 부통령은 당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바이든)에 대한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성취를 나열하며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