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필자가 푹 빠져 읽고 있는 소설이 있다. 바로 일본의 국민적 작가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는 작품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자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카모토 료마의 일생을 다룬 역작으로 전체 8권의 번역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역사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중요한 인물을 작가 나름의 시각에서 조명하면서 그 시대의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마치 자신이 그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근대 직전을 다룬 우리나라 소설로서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나 <젊은 그들> 등을 들 수 있다. 흥선대원군을 소재로 하여 조선 말기 불운한 왕족 대군들의 처량한 삶과 야망, 그리고 반격과 좌절의 역사를 절절히 묘사하고 있어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일본의 에도 막부 말기에 서양의 군함과 상품이 밀려드는 1850년대 이후 일본 봉건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취재를 바탕으로 써 내려간 역사소설만큼 좋은 재료도 없을 것이다. <료마가 간다>는 그 좋은 예이다.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읽어 보기를 적극 권하고 싶다.
1850년대 이후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다. 1853년 미국의 흑선이 에도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료마는 에도의 검술 도장에서 검술 수업을 받는 도사 번(지금의 고치현)에서 유학 온 한낱 하급 무사에 지나지 않았다. 막부는 에도에 나와 있는 각 번들에 에도의 해안경비를 요구한다. 료마도 도사 번의 해안경비대에 징발되어 배치되는데 그는 해안경비보다도 도대체 미국의 흑선이란 무엇인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는 흑선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경비대를 이탈한다. 가까이에서 본 그 배는 서양의 증기선으로 철갑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거리가 훨씬 긴 대포를 가지고 있다. 일본 막부가 가지고 있는 청동으로 된 무늬만 대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서양의 기술과 무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막부권력의 무력함을 절감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난세에 처한 일본에서 다른 어떤 세력도 가지지 못했던 독특한 관점과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 그 궁극은 메이지 유신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피력하고자 한 사카모토 료마의 인물상은 다음과 같다고 필자는 이해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점은 료마가 '일본'이라는 '국민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개혁운동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의 개혁가(지사)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막부 정권 또는 번이라는 범주 안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막부의 가신들은 막부의 권력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서양 세력과 타협하고 점진적인 개국을 단행한 데 반해 급진적 양이론을 주장한 사쓰마(가고시마현), 조슈 번(야마구치현)은 교토의 천황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새로운 막부를 열고자 하는 목적으로, 즉 도쿠가와 장군의 시대를 끝내고 사쓰마의 시마즈 장군의 시대 또는 조슈의 모리 장군의 시대를 열고자 주도권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이러한 경쟁은 그 옛날 막부의 권력을 놓고 천하의 영주들이 한바탕 싸움판을 벌였던 전국시대의 그 상황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료마가 소속되어 있던 도사 번도 마찬가지다. 같은 번 출신의 다케치 한페이타라는 인물은 료마와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막부의 지지세력인 도사 번에서 정변을 일으켜 양이론을 주도하는 번으로 개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료마에게 이 운동에 참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료마는 이를 거절한다. 그는 하나의 번의 힘만으로는 이 난세를 이겨낼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료마는 번 중심의 봉건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번을 모두 통합한 일본이라는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개혁을 주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당시의 무사 중심의 막번체제에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카모토 료마의 이러한 혁명적인 사고는 기존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자유로운 개성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그의 '탈번'이 증명해 준다. 당시 무사계급은 자신이 속한 번과 영주가 그들 세계의 전부였다. 자신의 존재 이유였다. 번에 소속되기 때문에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또 충성을 바칠 대상이 있는 것이다. 탈번이란 이제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탈번은 중죄이므로 계속되는 추적에 시달린다. 탈번으로 인하여 료마는 그의 사랑하는 누나조차 잃었다. 그는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말한다. “외교 하나 변변히 못해 조약을 맺더라도 수모를 받아 가며 주종 간의 고용 계약 같은 것을 맺고 있어. 정치라는 것은 서민의 생활을 세워 나가게끔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도쿠가와 막부는 장군 집안의 보호와 번영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어. 이따위 터무니없는 정부가 세계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결국 그는 막부파에도 속하지 않고 특정 번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막부파의 핵심 인물들과도 교류하고 사쓰마, 조슈의 격렬한 양이 운동가들과도 교류하면서 일본 개혁·개방의 방향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정반합이라 했던가! 그는 일본의 분열된 정치 세력들을 어떻게 통합해 내었는가? 그것은 세계의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판단력과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한 독창적인 전략, 그리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료마의 넓은 인품이었다. 료마는 당시 일본 무사들의 칼로는 서양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실제로 격렬한 양이론을 펼쳤던 조슈 번은 미국 상선이나 군함에 대포를 쏘았지만 미국 군함의 화력에 조슈 번의 군함과 해안포대가 절멸되는 경험을 하였다. 료마는 서양의 군함과 상선이 갖고 싶었다. 군함과 상선을 가지고 바다로 나아가 무역을 해야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군함과 상선을 만들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요컨대 료마의 이 시기는 낭인 함대를 만드는 것만이 목표였다. 장차 그것으로 해운업을 경영하여 그 이익금으로 막부를 쓰러뜨릴 자금을 만들고, 막상 전쟁이 날 때는 짐 대신 포탄을 싣고 그 위력으로 천하를 호령하자는 좀 색다른 방식이다.” 그렇게 그는 해원대라는 사설 함대를 만든다.
막부와 양이론자들 간에 그 옛날의 전국시대적 정쟁이 난무하던 그 시절, 료마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혁의 동력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 개혁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그의 포용적 인품이 크게 힘을 발휘한다. 그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논쟁을 싫어했다. 그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논리(예를 들면 무모한 양이론)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을 더 중시했고 논쟁을 통한 승리보다 상대에 대한 포용을 더 선호했다.
도사라는 시골의 하찮은 하급 무사. 목욕을 싫어하여 언제나 먼지가 쌓여 있는 푸석한 머리와 시커먼 얼굴. 습관적으로 길거리에 오줌 누기를 좋아한 괴팍한 인물.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떠돌이 개혁가로서 결혼을 포기했던 남자. 그렇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여 막부 말기 분열된 일본을 대통합으로 이끈 위대한 인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료마가 살았던 그 시대만큼 난세는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먼 훗날 이 시대가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이었다고 회상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한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말싸움이 난무하는 요즘의 시대. 그리고 그 말싸움에서의 승리에 목숨을 거는 속 좁은 정치의 시대. 우리는 사사로운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를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도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이미 내가 속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시대를 그려나갈 수 있는 거대한 인물을 갈망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필자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사카모토 료마의 출현을 상상해 본다. 이제는 '국민국가'라는 틀을 넘어 '세계시민'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관점에서 우리 시대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줄 새로운 지도자, 그 지도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1850년대 이후 일본은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다. 1853년 미국의 흑선이 에도 앞바다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료마는 에도의 검술 도장에서 검술 수업을 받는 도사 번(지금의 고치현)에서 유학 온 한낱 하급 무사에 지나지 않았다. 막부는 에도에 나와 있는 각 번들에 에도의 해안경비를 요구한다. 료마도 도사 번의 해안경비대에 징발되어 배치되는데 그는 해안경비보다도 도대체 미국의 흑선이란 무엇인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는 흑선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경비대를 이탈한다. 가까이에서 본 그 배는 서양의 증기선으로 철갑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거리가 훨씬 긴 대포를 가지고 있다. 일본 막부가 가지고 있는 청동으로 된 무늬만 대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서양의 기술과 무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막부권력의 무력함을 절감하였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난세에 처한 일본에서 다른 어떤 세력도 가지지 못했던 독특한 관점과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 그 궁극은 메이지 유신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피력하고자 한 사카모토 료마의 인물상은 다음과 같다고 필자는 이해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점은 료마가 '일본'이라는 '국민국가' 개념을 바탕으로 개혁운동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의 개혁가(지사)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막부 정권 또는 번이라는 범주 안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막부의 가신들은 막부의 권력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서양 세력과 타협하고 점진적인 개국을 단행한 데 반해 급진적 양이론을 주장한 사쓰마(가고시마현), 조슈 번(야마구치현)은 교토의 천황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이 새로운 막부를 열고자 하는 목적으로, 즉 도쿠가와 장군의 시대를 끝내고 사쓰마의 시마즈 장군의 시대 또는 조슈의 모리 장군의 시대를 열고자 주도권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이러한 경쟁은 그 옛날 막부의 권력을 놓고 천하의 영주들이 한바탕 싸움판을 벌였던 전국시대의 그 상황과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료마가 소속되어 있던 도사 번도 마찬가지다. 같은 번 출신의 다케치 한페이타라는 인물은 료마와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막부의 지지세력인 도사 번에서 정변을 일으켜 양이론을 주도하는 번으로 개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 세력을 몰아내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그는 료마에게 이 운동에 참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료마는 이를 거절한다. 그는 하나의 번의 힘만으로는 이 난세를 이겨낼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료마는 번 중심의 봉건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번을 모두 통합한 일본이라는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개혁을 주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당시의 무사 중심의 막번체제에서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카모토 료마의 이러한 혁명적인 사고는 기존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았던 그의 자유로운 개성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그는 막부파에도 속하지 않고 특정 번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막부파의 핵심 인물들과도 교류하고 사쓰마, 조슈의 격렬한 양이 운동가들과도 교류하면서 일본 개혁·개방의 방향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정반합이라 했던가! 그는 일본의 분열된 정치 세력들을 어떻게 통합해 내었는가? 그것은 세계의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판단력과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한 독창적인 전략, 그리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료마의 넓은 인품이었다. 료마는 당시 일본 무사들의 칼로는 서양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실제로 격렬한 양이론을 펼쳤던 조슈 번은 미국 상선이나 군함에 대포를 쏘았지만 미국 군함의 화력에 조슈 번의 군함과 해안포대가 절멸되는 경험을 하였다. 료마는 서양의 군함과 상선이 갖고 싶었다. 군함과 상선을 가지고 바다로 나아가 무역을 해야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군함과 상선을 만들어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요컨대 료마의 이 시기는 낭인 함대를 만드는 것만이 목표였다. 장차 그것으로 해운업을 경영하여 그 이익금으로 막부를 쓰러뜨릴 자금을 만들고, 막상 전쟁이 날 때는 짐 대신 포탄을 싣고 그 위력으로 천하를 호령하자는 좀 색다른 방식이다.” 그렇게 그는 해원대라는 사설 함대를 만든다.
막부와 양이론자들 간에 그 옛날의 전국시대적 정쟁이 난무하던 그 시절, 료마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혁의 동력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그 개혁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그의 포용적 인품이 크게 힘을 발휘한다. 그는 결코 논리적이거나 논쟁적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논쟁을 싫어했다. 그는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논리(예를 들면 무모한 양이론)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을 더 중시했고 논쟁을 통한 승리보다 상대에 대한 포용을 더 선호했다.
도사라는 시골의 하찮은 하급 무사. 목욕을 싫어하여 언제나 먼지가 쌓여 있는 푸석한 머리와 시커먼 얼굴. 습관적으로 길거리에 오줌 누기를 좋아한 괴팍한 인물.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떠돌이 개혁가로서 결혼을 포기했던 남자. 그렇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여 막부 말기 분열된 일본을 대통합으로 이끈 위대한 인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료마가 살았던 그 시대만큼 난세는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먼 훗날 이 시대가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이었다고 회상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정말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한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말싸움이 난무하는 요즘의 시대. 그리고 그 말싸움에서의 승리에 목숨을 거는 속 좁은 정치의 시대. 우리는 사사로운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를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지도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이미 내가 속한 이해관계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새로운 시대를 그려나갈 수 있는 거대한 인물을 갈망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필자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사카모토 료마의 출현을 상상해 본다. 이제는 '국민국가'라는 틀을 넘어 '세계시민'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관점에서 우리 시대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줄 새로운 지도자, 그 지도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우리에게도 사카모토 료마가 있다! 대한민국의 사카모토 료마는 유재일! 한국대전략연구소에 가입하고 후원하시라! (유재일 평론가 공개 전화번호 010-2326-3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