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업계가 미국 대선에서 주요 격전지로 떠올랐다. 자신을 '가상화폐 대통령'으로 칭하며 최근 급격하게 가상화폐 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가상화폐업계 표심을 싹쓸이하겠다는 듯 야심 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전통적으로 가상화폐 규제 입장이었던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시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27일(현지시간) CNN,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가상화폐 관련 청사진을 쏟아냈다. 그는 재집권 시 미국을 "전 세계 가상화폐 수도이자 비트코인 초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비트코인 전략 비축분'을 창설하겠다고 밝혔다. 각국이 석유 등 주요 자원에 대해 '전략 비축분'을 만들어 국가가 일정 규모를 보유·관리하는 것처럼 비트코인에 대해서도 이 같은 정책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미국 연방정부가 전체 비트코인 유통량 중 1%가량인 21만개를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를 절대로 매각하지 않고 '비트코인 전략 비축분'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 유통량은 최종적으로 2100만개가 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현재 유통량은 1973만개 가량이다.
이에 '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쓰인 모자를 쓴 콘퍼런스 참석자들은 트럼프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표했다.
트럼프는 과거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언급하는 등 가상화폐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왔으나 올해 들어서는 가상화폐로도 기부금을 받겠다고 밝히는 등 180도 바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NBC는 이에 대해 "트럼프 캠프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에서 일부 젊은 유권자, 특히 유색 유권자를 빼앗아 올 수 있다고 확신한 데 따른 것"이라고 평했다.
가상화폐업계는 미국 대선에서 여러모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주 공개된 가상화폐 거래소 제미니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상화폐 보유자 중 73%가 대선 후보의 가상화폐 정책 성향을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정치자금 감시기관 오픈 시크리츠에 따르면 가상화폐업계는 올해 대선 기부금으로 현재까지 1억2100만 달러(약 1676억원)나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트럼프보다 더 가상화폐 친화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다. 그는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트럼프보다 하루 앞서 연설자로 나서 자신이 집권 시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최소한 400만개 보유할 때까지 매일 매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400만개는 비트코인 최종 유통량 중 20%가량으로, 케네디는 미국이 전 세계 금 가운데 20%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트코인 역시 그와 비슷한 양을 보유하면 미국이 가상화폐 분야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해리스 역시 가상화폐업계 공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FT에 따르면 최근 며칠 동안 해리스 측근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등 주요 가상화폐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관계 재설정'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바이든 정부가 가상화폐업계를 대상으로 규제 위주 정책을 펼쳐온 가운데 해리스는 이 같은 틀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어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리스는 가상화폐업계를 넘어 기술업계와 전체 재계를 향해 민주당이 '친기업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리스가 본격적으로 대선 도전에 시동을 건 가운데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가상화폐업계 표심을 돌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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