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 여파가 예상 외로 심각해 연내 금리 인하가 이뤄지더라도 실질적인 내수 회복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부채가 소비 부진의 원인이라 금리를 낮춰도 내수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암울한 주장도 제기한다.
22일 한국은행의 국제수지(잠정) 지표를 살펴보면 지난 5월 서비스수지 가운데 여행수지는 8억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7억9000만 달러)보다 적자 폭이 8.9% 확대됐다.
5월 기준 여행수지 적자는 2019년 8억9000만 달러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0년 2억 달러로 급감했다가 올 들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국내 소비 지표는 반대 양상이다. 5월 소매판매(불변)는 1년 전보다 3.1% 줄면서 3개월째 감소세다. 감소 폭도 전월(-2.2%)보다 확대됐다. 승용차(-9.2%), 의복(-6.8%), 음식료품(-3.6%) 등 감소 폭이 컸다.
서비스 소비도 둔화 흐름이다. 서비스업 생산(불변) 중 소비와 밀접한 도소매업(-1.4%), 숙박·음식점업(-0.9%) 등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6월 소비자 심리지수도 100.9로 장기 평균 수준에서 횡보하는 중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간한 경제동향 7월호를 통해 "소비는 일부 서비스업을 제외한 대다수 부문에서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며 "해외 소비는 높은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외 소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건 양극화 현상의 심화 사례로 볼 수 있다"며 "젊은층 소비는 해외 직구 활성화로 내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고령화 심화로 노인층 소비도 줄어드는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KDI "고금리에 내수회복 지연"…"실질소득 감소 영향 커" 반론도
수출 호조세를 내수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KDI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출 증대가 가계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더라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킨다고 우려했다.정책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면 민간소비는 3개 분기가 지난 뒤 최대 0.7%포인트, 설비투자는 2.9%포인트 각각 감소한다는 게 KDI 측 분석이다. 해당 영향은 8~9개 분기까지 유의미하게 지속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은 2022년 8월(2.50%)부터 지난해 1월(3.50%)까지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올린 뒤 동결을 이어가고 있다. KDI 분석대로라면 하반기에 금리를 내리더라도 내년 이후에나 내수와 투자 회복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소비 부진의 원인을 금리보다 부채 규모에서 찾는 목소리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내수가 부진한 건 고금리보다 대출 총량이 늘어난 때문"이라며 "하반기에 금리가 인하돼도 내수 회복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이 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금리를 내리면 도리어 부동산 대출이 늘어나 원리금 상환 부담 때문에 내수 소비가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소비가 부진한 건 2년 연속 실질소득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며 "실질소득 증가 없이 금리만 낮출 경우 (내수 회복 역시)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