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유럽에서는 독일에 이어 2번째로 이탈리아에 세워졌다. 이에 일본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언론은 '평화의 소녀상'이 한국과 일본 간 논란을 촉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22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 지역 일간지 루니오네 사르다 및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이탈리아 서부 사르데냐섬의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스틴티노시의 콜롬보 해안에서 리타 발레벨라 스틴티노 시장,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 및 현지 주요 정계, 여성·아동계,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승인한 여성 인권변호사 출신 발레벨라 시장은 제막식에서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자행된 전쟁범죄 피해자들을 기리는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전시 성폭력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등 분쟁 지역에서 오늘날에도 발생하는 문제”이자 “평화에 반대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함으로써 비극적인 전쟁의 피해를 입은 모든 여성의 고통의 외침에 연대하게 되었다"고도 지적했다.
이나영 이사장은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하며,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젠더 기반 폭력에 맞서는 투쟁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세워진 별도의 안내판에는 '기억의 증언'이라는 비문이 있어, 일본의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있다고 매체는 보도했다. 특히 일본이 해당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피해 여성 가족들에게 배상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스즈키 사토시 주이탈리아 일본대사는 지난 20일 스틴티노시를 찾아 일본이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 배상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연기할 것을 요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평화의 소녀상이 한국과 일본 간 논란을 촉발하고 있다고 루니오네 사르다는 보도했다.
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발레벨라 시장은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하며 "나는 이를 주이탈리아 한국대사에게 확인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정확한 소식이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공식적 입장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오늘 이 행사의 중심은 여성과 전쟁 기간 중 그들에게 자행됐던 범죄이고, 지금 우리가 기리는 한국 피해자들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등에서 현재 폭력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여성을 포함한다고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교도통신에 따르면 발레벨라 시장은 평화의 소녀상 비문이 '일방적 주장'을 담고 있으며 '일본만을 비판 대상으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발레벨라 시장은 한국 측의 입장을 들은 후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현재 스틴티노시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할 계획이 없다고 언급했다고 이탈리아 매체들은 보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세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소녀상도 철거 위기에 있다. 정의연에 따르면 현재 평화의 소녀상은 국내 148개, 해외 총 32개(철거 및 전시 후 미설치된 6개 제외, 스틴티노시 포함)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