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전자메카였지만 현재는 대표적인 서울 노후 구도심으로 방치된 세운지구가 초고층 친환경 도시로 발돋움한다. 한때 산업화를 상징했던 세운은 서울 도심부의 핵심 녹지축이자 문화거점으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전망이다. 다만 그간 개발의 걸림돌로 거론된 보상 문제와 고층 경관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 이슈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세운지구 재정비 촉진사업과 관련해 도시재정비위원회와 건축위원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시가 지난 2022년 세운지구의 개발 개념으로 새롭게 제시한 ‘녹지생태 도심’에 기반해 구체적 개발 청사진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현재 세운지구의 개발 목표는 도심을 위한 대표 녹지확보 조성과 고밀 개발로 요약할 수 있다. 171개로 난립하던 사업구역도 39개로 통합 정리됐다.
세운지구 재정비촉진사업은 단순한 지역 내 정비사업이 아닌 서울 도심을 관통하는 핵심 도시계획의 근간이 되는 사업이다. 서울시가 수립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시는 서울 도심부의 활력 증대를 위해 △국가중심축 △역사문화 관광축 △남북녹지축 △복합문화축 등 4개의 중심 축을 세로로 조성하고 이를 다시 횡(글로벌 상업축)으로 연결하는 '4+1축' 혁신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우선 재정비위원회에서 지상 도심공원 조성을 골자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변경) 결정(안)을 수정가결한 상태다. 세운지구 내에서 종로3가역 남측 부지를 중심으로 1만1000㎡ 규모 도심공원을 만들고, 지하에는 1500석 규모의 뮤지컬 전용 공연장을 조성해 도심의 대표 여가·문화거점으로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생태도심 조성을 통해 민간 개발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이어 세운지구 내 고층 업무 및 근린생활시설 건립을 위한 건축 심의가 지난해 통과되면서 을지로 인근을 중심으로 고층 개발도 진행될 방침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 3-2, 3구역’에는 지상 36층 규모의 2개 동이 들어설 전망이다. ‘세운3-8, 9, 10구역’에도 39층 이상 규모의 2개 동이 조성된다. ‘세운 6-3-3구역’에도 32층 규모의 1개 동이 지어질 예정이다.
세운지구는 종로3가와 청계천, 충무로역 일대 44만㎡ 지역으로 한국전쟁 직후부터 각종 상가와 판자촌이 무질서하게 들어섰다. 이후 1966년 서울시가 판자촌 철거와 함께 당시로는 최신형태의 설계를 도입한 세운상가 착공에 들어가 1968년 이를 완성했다.
세운상가는 전자·기계·인쇄 등 각종 업체와 주거시설이 융합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계획 상가였다. 각종 전자업체와 소규모 유통 메카로 빠르게 자리잡으며, 세운상가를 필두로 1970년대 초반 청계상가, 세운대림상가와 삼풍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이 중구 퇴계로까지 잇달아 들어섰다. 이어 업무시설 일부와 호텔시설도 자리 잡으며 현재의 세운지구의 구조가 형성됐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용산전자상가의 부상과 비효율적 도시 구조, 시설 노후화가 겹치며 상권 몰락과 함께 슬럼화가 급속히 진행됐고, 급기야 1995년 첫 철거계획이 나오기에 이른다. 이후 2006년 처음으로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고, 2009년에는 세운상가 일대를 통합 개발하기 위한 재정비 촉진계획도 수립됐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지구 8개 구역에 36층 수준의 주상복합을 짓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이후 건설경기 침체와 고층 개발로 인한 종묘 등 문화재 경관 훼손 우려 등으로 개발 방향을 놓고 갈등이 지속됐다. 특히 지구 내 상가·호텔 소유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실질적인 난관으로 떠올랐다. 수익성 악화 전망이 거듭되며 결국 사업은 2010년 중단됐다.
현재도 시는 PJ호텔과 삼풍상가 등의 소유주 등과 지속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협의 매수에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 중간에 자리잡은 PJ호텔 측이 최근 영업을 지속할 의사를 밝히면서, 녹지축 조성을 위한 실제 수용까지 시의 당초 예상보다 더욱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도 최근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