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3만6194달러로 일본의 3만5793달러를 앞질렀다. 2005년에는 한국은 1만9384달러로 일본의 3만8644달러의 50.2% 에 불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2013년에는 한국은 2만7537달러로 4만2228달러인 일본의 65.2%에 접근했다. 이후에도 한국은 2019년에는 일본의 76.0%, 2021년에는 84.2%, 2022년에는 90.2%로 추격했고 마침내 2023년에는 일본을 앞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한·일 간 역전극은 그동안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일본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2001~2023년 실질 GDP의 연평균 성장률은 3.6%인 데 비하여 일본의 같은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0.7% 수준이었다.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94년 1만 달러 선을 넘은 이후 외환위기로 1998년 8271달러로 추락했다가 2006년 2만 달러를 넘어섰고, 2017년에는 3만1600달러를 기록한 이후 4만 달러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2023년의 기간평균 달러당 환율을 1305원으로 산정하였기 때문이고, 만약 2021년 환율(1144원)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인당 GNI는 4만1286달러로 사실상 4만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1인당 GNI가 4만 달러에 접근했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한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1%, 2030년대에는 0.6%에 이어 2040년대엔 -0.1%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50년에 마이너스 성장률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은 OECD 등에서도 누차 발표한 바 있고, 지난 수십 년간 경제성장률 하향 추세를 감안하면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보인 일본의 빠른 경제적 추락의 결과로 인해 2023년 한국이 일본을 앞선 것이지만 향후 30년 미래에 한국 경제의 추락은 일본 경제가 추락한 경로를 그대로 답습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 경제의 위상 추락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것으로 속 편하게 치부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석유·가스·철광석·니켈·구리 등 중요 광물자원이 거의 없고, 쌀 이외의 각종 식량 자급률은 2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동안 우수한 인적 자원 중 하나로 10만㎢에 불과한 국토 면적에 변변한 자원도 거의 없는 대한민국 5000만명의 국민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지만 풍부한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한 인해전술을 펼치는 신흥 개도국과의 경쟁이 점차 한계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유사한 자연 조건, 인적 조건, 제도적 조건을 가진 일본이 걸어온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숙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전율이 일지만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마저 부정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다른 사람, 다른 기업, 다른 국가와 단순히 비교하여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 길을 가면 된다. 확실한 것은 그동안 벤치마킹 대상 국가였던 일본을 넘어서야 현재의 한계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우리의 강점이었던 인적 자원을 훼손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AI와 로봇이 좌우할 미래 발전 시대에는 큰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혁신'이다. 기업과 개인이 주도하는 기술 혁신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 환경이 과감히 개혁되어야 한다. 혁신을 지원하기는커녕 혁신의 발목을 잡는 각종의 제도적 폐습이 암세포처럼 더욱 기성을 부리는 현실에서는 새로운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경제적 지대(rent)를 지키고 확대하는 데만 골몰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국가 전체를 쇄퇴의 길로 가게 만든다는 것은 오랜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