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KRX) 독점 체제가 70년 가까이 이어진 국내 증권거래 시장이 앞으로 '부분 경쟁' 체제로 바뀝니다. 국내 증시에서 KRX 역할 일부를 대신할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대체거래소)'가 2025년 상반기부터 가동할 예정이에요. ATS는 현행 공시 접수 마감시간 이후에도 장을 열어 놓습니다. 이 덕분에 상장사가 장 마감 후 악재성 공시를 내는 '올빼미 공시' 관행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빼미 공시는 상장사가 오후 3시 30분 정규장 종료 이후 시간에 슬그머니 내는 공시입니다. 공시의무 때문에 자사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횡령·배임 등 다양한 내용을 시장에 알려야 인데, 그 영향을 희석하려고 정규 장이 닫힌 이후 시간대를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죠. KRX의 현행 공시 접수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장 마감 후 악재성 공시를 할 수 있는 틈이 2시간 이상 있습니다.
KRX도 올빼미 공시의 폐해를 알죠. 2019년 5월 관련 제도 개선책을 내놨습니다. 사흘 이상 연휴가 있을 때 연휴 직전 거래일, 연말 폐장일에 자주(1년 2회, 2년 3회 이상) 공시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투자자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공시 내용은 KRX 차원에서 연휴 직후 첫 거래일에 재공시하기로 했고요. 하지만 2019년만 놓고 보면 폐장일 직전 공시는 249건으로 전년(251건) 대비 큰 변화가 없었죠.
KRX는 올해도 연말 폐장을 앞두고 올빼미 공시 유의를 당부할 텐데요. 투자자에게는 이 시기 집중되는 공시의 악재성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라고 할 겁니다. 기업에는 시장에서 불필요하게 올빼미 공시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요 정보를 마지막 거래일 장 종료 전 공시를 권고하고요. 금융감독원도 공시에 불공정거래 소지가 있으면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해 왔는데 사실 공시 시점만 가지고 위법성을 찾긴 어렵겠죠.
애초에 장 운영이 끝나기 전에 당일 공시 접수를 마감해 버리면 어떨까요? 공시 접수 시간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ATS가 가동하면 이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ATS는 KRX보다 장을 더 일찍 열고, 더 늦게까지 운영하거든요. 올해 5월 9일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투자자는 ATS를 통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 주식 거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넥스트레이드(Nextrade)가 초기 참여할 21개 증권사와 함께 ATS 운영을 준비 중입니다. 이 회사는 상장된 주식과 증권을 '매매 체결'하는 영역에서 정규거래소인 KRX와 경쟁하기 위해 여러 출자자가 모여 세운 회사입니다. 2022년 11월 자본시장법상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으로 설립돼 지난 2023년 7월 관련 예비인가를 취득했고 지난달 초 세부 운영방안을 발표했어요.
금융 당국이 두 거래소 간 경쟁으로 추구하는 핵심 목표는 증권사에 들어간 매수·매도 주문을 모아 '거래를 더 효율적으로 체결하는' 시장을 주식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건데요. 여기서 '효율'은 통상적으로 수수료 같은 거래 비용을 더 낮추고 그러면서도 거래 체결 속도를 높이는 것을 뜻합니다. 다만 실제 거래에 필요한 청산·결제·시장감시 업무는 여전히 KRX, 예탁결제원, 시장감시위원회가 맡습니다.
발표된 ATS 운영방안에 따르면 ATS가 제공할 증권거래 서비스는 기존 KRX 개장 전 오전 8시부터 오전 8시 50분까지 '프리(Pre)마켓'으로 운영되고 KRX 장 마감인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애프터(After)마켓'으로 운영됩니다. KRX의 정규 거래시간(현행 오전 9시~오후 3시 20분→ATS 출범 후 오전 9시~오후 3시 25분)에는 KRX 시장과 직접 경쟁하게 되고요.
ATS를 통한 전체 증권거래 시간 폭은 확대되고 KRX 정규 거래시간도 소폭 변경되지만, 공시 접수시간은 현행 유지됩니다. 금융 당국은 기업의 '당일 공시사항'이 대부분 영업시간 중 발생하며, 공시시간을 함께 연장하면 기존 올빼미 공시 관행이 지속할 우려가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매도 과열종목'이나 '투자자 유의·관리종목' 지정 등 익일 적용되는 시장조치는 ATS 거래 종료 후인 오후 8시에 공표됩니다.
아직 ATS 운영방안 상 계획된 경쟁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기존 KRX 독점 체제의 올빼미 공시 관행이 완전히 억제되긴 어렵겠습니다. ATS는 모든 상장 종목이 아니라 우선 유동성 높은 코스피·코스닥 종목 800여개가 거래됩니다. 또 ATS에서 경쟁매매로 체결되는 거래량은 종목별 30%, 시장 전체 기준 15%로 제한됩니다. 공시 접수 마감 후 ATS 거래량을 제한하진 않지만, KRX의 대안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느낌입니다.
최근 발표된 '기업 밸류업, 자본시장 레벨업을 위한 한국거래소 핵심전략'에 따르면, 넥스트레이드는 2025년 3월 초 영업을 시작합니다. 이에 KRX도 '복수시장 체제'에 대비 중입니다. 거래정지·서킷브레이커 등 시장조치 정보를 ATS에 실시간 전송하고 시장간 정합성 있는 공매도 관리체계를 구축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중간가 호가' 같은 신규 호가 유형 도입, 호가 가격단위 축소로 거래 편익을 개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