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세계 경제 요동치는데 미국만 나홀로 '골디락스'

2024-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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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나홀로 골디락스’ 미국
 
바람이 불어도 모두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다. 바람과 함께 요동치는 나무들도 있고 뿌리째 뽑히는 나무들도 있지만, 흔들림 없이 우뚝 선 나무가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있다. 넘실대는 파도에 작은 배들은 요동을 치지만 흔들리지 않는 배가 있다. 항공모함 같은 대형 선박이 있다.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흔들림 없이 성장세를 이어가는 미국이 있다. 2010~2019년(코로나19 이전) 세계는 약 3.7% 경제성장률 수준에서 성장해 왔다. 2020년 코로나19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경제는 흔들렸고, 과거의 높은 성장세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IMF는 세계경제가 2024년 2.7%에서 2029년 2.5%로 성장률이 점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주요 선진국 모임으로 일컬어지는 G7 국가들도 2029년까지 2% 성장세를 유지하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할 것으로 전망한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은 그나마 1%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지만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1%도 채 안 된다. 세계경제는 장기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나 홀로 성장’을 하는 배경은 무엇이고, 한국은 이런 흐름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야 하겠다.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미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
 
첫째, ‘돈의 이동’이다. 주식 및 채권펀드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은 물가 안정을 위해 5.5% 수준의 고금리를 채택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만큼 높은 금리를 도입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정책금리보다 낮은 수준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예를 들어 달러 인덱스(US Dollar Index)를 구성하는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모두 미국 기준금리보다 낮다. 금리 차에 더해 지정학적 리스크와 위험 회피 성향이 달러 선호 현상을 만들었고, 미국 시장으로 펀드 자금이 쏠리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거시경제 건전성 면에서 유독 취약한 중국과 홍콩 등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미국 시장에 집중되었다. 미국 주식시장의 견조한 흐름뿐만 아니라 실물경제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자양분으로도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BIS
자료: BIS

둘째, 미국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IRA(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이션감축법)가 대표적이다. IRA는 미국 내 생산품에 대해 세액 공제나 보조금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것으로, 자국 산업을 우대하는 보호무역주의 정책이자 중국 등에 있는 제조기지를 미국으로 옮길 것을 유도하는 리쇼어링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IRA 법안 내용 중 기후변화 대응 관련으로 지급하는 전기차 구매 지원금을 미국 내 생산 기업에 한정하게 되어 세계적인 논란이 인 바 있다. 실제 전기차, 이차전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걸쳐 다국적 기업들의 미국 현지 공장 증설을 유도해냈다. 이러한 노력은 과거 중국 등 신흥국으로 향했던 글로벌 해외직접투자 유입액을 미국으로 향하게 했고, 다국적 기업들의 엄청난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를 이끌었다. 나아가 수많은 해외 기술인재들을 유입시키고, 미국 기업들과 기술교류를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는 고금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성장세와 완전고용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셋째, 외국인 인력 유입이다. 미국 경제가 강한 흐름을 보인다는 확실한 근거 중 하나는 고용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4%도 안 되는 낮은 실업률 상태, 즉 완전고용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적극적인 이민 정책과 해외 인력 유입을 배제할 수 없다. 기술인재를 비롯한 고급 인력들도 있겠지만 단순 노무직 등과 같은 저부가가치 노동력도 산업 곳곳에 요구된다. 높은 임금과 달러 강세는 해외 노동력을 유인하기 좋은 조건이 될 것이고, 더욱이 외국인 인력이 만족할 만한 교육 등 정주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인력난에 처해 있는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넷째, 미국이 AI 기술을 선도하고, 전 산업에 걸쳐 범용화하고 있다. 최근 OECD의 한 보고서는 미국 ICT 산업 성장률이 약 9.5%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약 2%에 달하는 미국 경제성장률을 고려해 보면 ICT 산업의 성장 속도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성장이 멈춰 있거나 역성장하는 전통산업들이 있다 하더라도 빅테크 기업이나 플랫폼 기업들이 미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ICT 산업 중에서도 AI(인공지능)와 AI 반도체 부문의 주요 기업들은 몇십 혹은 몇백 %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I는 단순 응답 기능을 시작으로 의료, 금융, 제조, 유통, 교통, 농업, 국방, 콘텐츠 등 전 분야에 걸쳐 확대 적용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생산성을 고도화하고 있다.
 
AI 기술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인간 업무 역량을 능가하고 있다. AI가 초기 도입 당시 능력을 지수화했을 때 -100이라고 하고, 인간의 역량 수준에 이르렀을 때를 0이라고 해보자. 1998년 AI가 필기 인식(handwriting recognition)과 음성인식(speech recognition) 영역에서 초기 도입되었고, 당시의 능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이미 2018년 정도에 인간의 역량을 넘어 0을 상회했다. 이미지 인식(image recognition)과 언어이해(language understanding) 영역에서 AI를 도입한 것은 각각 2009년과 2018년인데 급속도로 고도화되어 현재 인간의 역량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ChatGPT의 수학능력(GRE mathematics test)은 현재 인간의 역량을 훨씬 초월한 60 수준에 달한다.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자료: IMF(2024.4) World Economic Outlook
다섯째, 미국이 원유 수출국이 되었다. 미국은 이미 2020년을 기점으로 원유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었다. 미국은 하루 약 1008만6248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약 851만9112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는 원유 순수출국이다. 이는 세계경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원유 수출이 부가가치 창출에 이바지하겠지만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OPEC+ 회원국들이 원유 감산 조치 등을 통해 국제 유가가 급등해도 충격이 덜할 수 있고, 에너지 공급 차단과 같은 제재나 공격에도 에너지 안보 면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주요 산유국들과 외교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도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고착화할 때 미국은 나 홀로 강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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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 


미국이 장기적으로 고성장하는 흐름과 그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에 주는 함의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고성장하는 주력 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의 궤를 함께해야 하겠다. 대표적인 예가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다. AI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AI 반도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HBM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AI 서비스-AI 반도체-HBM에 이르는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이 AI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 산업에 걸쳐 AI를 도입하는 움직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의 특화된 산업을 무기로 AI 글로벌 공급망에서 입지를 다져야 한다.
 
선도적 기술 확보가 요구된다. 정교한 기술 로드맵을 특정하고, 전략적으로 어떤 섹터의 어떤 기술에 우위를 점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 정부출연연구소, 대학이 기술교류와 융합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산업에 특화된 기술인재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술적 우위에 있을 때나 미국이 파트너 국가로 인정해 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과실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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