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글로벌 사우스 중심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라

2024-03-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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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빙하가 물리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면, 글로벌 사우스가 지정학적·경제학적 관점의 지각변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백 개의 퍼즐로 구성된 지구를 상상해 본다면, 이전에 없던 다른 공식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듯하다.
 
글로벌 사우스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게 되었다. 의회에서 두 정당의 세력이 비슷할 때 그 승패를 결정하는 제3당이 있듯, 미국 동맹국과 중국 동맹국 간의 첨예한 갈등이 전개되는 동안, 제3 세력이 부상하는 모습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이 서로 글로벌 사우스와의 파트너십을 확보하려 경쟁하고 있다. 그 변화는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공급망·수출·기술패권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개발도상국 또는 제 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글로벌 노스(Global North)가 미국과 유럽 주요국, 한국, 일본 등의 선진국을 뜻하는 개념이었다면, 글로벌 사우스는 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개발도상국들을 일컫는 용어다.
 
20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이 글로벌 노스였다면, 21세기에는 글로벌 사우스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저성장, 고령화, 인구감소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주요 신흥국들이 고성장, 인구증가,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세계 경제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125개 국가의 GDP는 이미 세계 GDP의 약 40%에 달하고, 이들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2에 달한다.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단일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더욱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한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공산주의 진영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의 글로벌 질서가 서방 국가들 주도로 운영됐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음에 불만을 보여왔다. 특히, 미국의 러시아 경제제재나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 등과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고, 서구 중심의 탄소 저감 노력이 개발도상국에게 과도한 부담이 됨을 피력해 왔다. 유엔 총회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동의하는 결의안이 채택되거나, IMF, G20 등의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중심의 지각변동,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첫째, ‘중국과의 디커플링’이라는 관점에서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2017년 이후 미·중 패권전쟁이 강하게 격돌하면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의존도를 적극적으로 줄여왔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2017년 21.6%에서 2022년 16.5%, 2023년 14.5%로 감소했다.
 
진영 대 진영의 싸움이 고조되면서 진영 간의 교역은 감소했지만, 양쪽 진영으로부터 다소 중립적 입장을 취해오던 글로벌 사우스와의 교역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멕시코, 베트남, 인도 등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2017년에는 멕시코보다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았지만, 2023년에는 역전되었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로부터의 수입액도 크게 늘었다. 2017~2023년 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입액 증감률은 약 -14.8%로 감소한 반면, 멕시코, 베트남, 인도 수입액은 각각 51.9%, 145.9%, 72.9% 증가했다.
 
자료  USITC 한국무역협회
자료 : USITC, 한국무역협회

둘째, 글로벌 사우스의 중심에 인도가 우뚝 서는 모습이다.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GDP 대비 FDI 순유입액 비율을 보면, 2010~2020년까지 중국이 4.0%에서 1.7%로 하락했지만, 인도는 1.6%에서 2.4%로 상승했다. 2025년 중국은 0.7%로 하락하고, 인도는 3.2%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의 공장’이 중국에서 인도로 점차 이동하는 모습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있다. 중국의 인건비가 더는 매력적이지 않고, 노동력이 풍부한 더 매력적인 국가로 대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인도의 움직임은 매우 대조적이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자립 인디아(Self-reliant India)’ 정책을 모디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생산기지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보강하고, 경영여건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면서 해외 투자 유치에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왔다. 2023년 인도의 인구는 중국의 인구를 초과했고, 고도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부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2023년 G20 정상회의를 인도에서 개최하고,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Voice of Global South Summit)’라는 이름으로 120개국을 초청한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글로벌 사우스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료  World Bank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20102020년은 World Bank의 실적 자료이고 2025년은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의 전망치임
 주1  2025년 전망치는 최근 5년 동안의 FDI 유입액의 연평균 증가율과 World Bank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활용하여 추계함
자료 : World Bank,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주1 : 2010~2020년은 World Bank의 실적 자료이고, 2025년은 한국경제산업연구원의 전망치임.
주1 : 2025년 전망치는 최근 5년 동안의 FDI 유입액의 연평균 증가율과 World Bank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활용하여 추계함.

셋째, 핵심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중심에 서게 된다.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전환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재생에너지 등에 들어가는 니켈, 리튬, 흑연, 코발트 등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세계 주요국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러-우 전쟁과 중동분쟁 등 자원 대국들의 지정학적 불안이 장기화함에 따라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 기업들의 중요한 경영전략으로 채택되고 있고, 세계 열강은 핵심 광물의 채굴량 및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국가들이 니켈, 코발트 등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남미 국가들도 리튬, 흑연 등의 광물 채굴량이 상당하다. 아프리카에도 세계 코발트 채굴량의 68%를 차지하는 DR콩고나, 세계 흑연 채굴량의 13%를 차지하는 모잠비크와 같은 나라들이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서로 개발권과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자료  USGS2023
자료 : USGS(2023)

지경학적 지각변동이 가져올 기회와 위협
첫째,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으로의 신시장 진출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과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수출구조로는 지경학적 지각변동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역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함에 따라 한국의 수출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개도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통해 무역구조의 다각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둘째, 핵심 광물 보유국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해야 한다. 아무리 반도체 강국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이차전지 강국이라 하더라도 소재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세계 열강이 글로벌 사우스 주요국들로부터 개발권, 채굴권, 판매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가만히만 있다면, 갈수록 자원의 영토가 줄어들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ODA(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고, 생산기지 이전과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등의 우호적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자원을 조달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원외교를 우선적 국가 의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탈중국·탈홍콩 현상을 현상으로서 지켜만 봐서는 안 된다. 적어도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이차전지 등과 같이 한국이 잘하는 산업만큼은 다국적 기업들을 한국으로 유치하기에 유리한 강점들이 있다. 한국 기업들과 기술교류를 확대하고, 공동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기술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한국에 연구기지를 둘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밖에도 해외 기업들의 한국 입성을 막는 과도한 규제들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미래형 규제자유특구를 조성해야 한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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