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캐즘에 빠진 전기차 .. '성장통' 이겨내려면

2024-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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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전기차가 골짜기에 빠졌다. 이른바 ‘전기차 캐즘(Chasm)’의 시대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일시적 후퇴인가, 구조적 쇠퇴인가? 시장을 명확히 진단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모색해야 한다.
 
캐즘(Chasm)은 본래 지질학 용어로 지층 사이의 단절 및 갈라진 골짜기 등을 뜻한다. 이후 경제나 비즈니스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벤처 기업이 처음에는 사업이 잘되는 듯하다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깊은 수렁에 빠지는 상태를 묘사하는 표현으로 범용화되었다. 첨단기술수용론에서는 혁신성을 중시하는 초기 소비자(early adopters)에게는 신기술이 수용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는 대중(majority)에게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급격히 침체기를 맞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
자동차는 한국 경제에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이다. 자동차, 자동차부품, 이차전지는 모두 한국의 15대 주력 수출품목에 들어간다. 반도체가 가장 중요한 수출품목이라고 공식화했지만, 사실 3대 자동차 관련 품목 수출을 기준으로 하면 그 공식은 깨진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986억 달러에 달해 전체 수출의 15.6%를 차지하지만, 3대 자동차 관련 품목의 수출액은 1조37억 달러(16.4%)로 반도체를 넘어서는 규모다. 구체적으로 2023년 수출액을 보면 자동차가 709억 달러(11.2%), 자동차 부품이 230억 달러(3.6%), 이차전지가 98억 달러(1.6%)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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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즘에 빠진 전기차
몇몇 국가들은 전기차가 주류시장(mainstream market)에 이미 진입한 반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캐즘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르웨이는 이미 전기차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범용화된 시장의 모습을 보이고, 스웨덴과 네덜런드도 30% 이상으로 캐즘을 넘어선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 미국, 일본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기 소비자에게까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전기차가 보급되었지만 캐즘을 넘어서지 못한 모습이다.
 
전기차 캐즘 현상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전기차 수출액이 처음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줄곧 증가해왔던 전기차 수출이 2024년 감소세로 진입한 모습이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수출 실적은 약 37억6000만 달러로 2023년 1분기 41억7000만 달러에서 9.9% 감소했다. 2023년 자동차 수출액에서 전기차 비중이 23.3% 수준이었다면 2024년 1분기 현재 21.4%로 떨어졌다. 2024년 연간 전기차 수출액도 2023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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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차전지 수출을 보면 더욱 자명하다. 이차전지 수출은 2018~2020년 1%대 증가율에 머물다 2021~2022년 15%대의 폭발적인 증가율로 급증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어 -1.5%로 감소했고 2024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2.3%나 감소했다. 2024년 연간 수출액도 많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차전지는 전기차의 부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이 정체되는 과정에서 선행적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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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미국의 전기차 시장도 줄곧 성장만 하다 주춤하고 있다. 2024년 1분기 전기차 판매 대수는 약 26만9000대에 달해 2023년 4분기에 비해 -7.3%로 감소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을 선도했던 테슬라의 매출액이 2023년 들어 주춤하기 시작해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2022년 2분기 65%에서 2024년 1분기 51%로 떨어졌다. 테슬라는 인력 감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 직원 수 14만명 중 10%에 달하는 약 1만4000명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진입해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기차, 성장 한계에 봉착한 배경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배경에는 수요가 확장되지 못하는 캐즘현상을 꼽을 수 있지만, 그 밖에 다른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요한 또 다른 요인이 ‘보조금 축소’다. 그동안 전기차 수요를 유인해 왔던 배경이 보조금이었다면, 보조금 축소는 수요 정체를 야기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독일은 2023년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20~30%가량 축소했고, 영국은 보조금 제도를 완전히 폐지했다. 세계적으로도 고금리 장기화의 흐름 속에 각국이 긴축재정을 펼치는 국면에서 보조금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특히 대선을 앞둔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보조금을 앞세워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보급해왔던 정책 기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두 번째 중요한 요인이 ‘출혈경쟁’이다. 테슬라가 2012년 ‘모델S’를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고,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해 왔다. 한국, 미국, 독일 등 자동차 강국의 완성차 업체들이 대거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일본 기업들도 한발 늦었지만 뒤늦게 경쟁에 합류했다. 특히, 중국의 비야디(BYD), 지리(Geely), 상하이자동차(SAIC) 등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샤오미도 첫 전기차 ‘SU7’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요는 정체되는 국면에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면서 전기차 기업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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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중국의 시장 장악’도 전기차 성장 한계에 한몫했다.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의 전기차 기업들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이미 중국 시장이 53.6%를 차지할 만큼 거대하고, 유럽(23.7%)이나 북미(15.3%)를 초과한 훨씬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2023년 기준). 중국 정부의 편파적인 보조금 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비야디(BYD)도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 1위 기업으로 부상했지만, 2023년 96%가 내수시장에서 발생했다. 거대한 내수시장은 중국 기업들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주고,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점유할 수 있도록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 시장을 기준으로 2017년 중국 전기차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3.4%에서 2020년 6.9%, 2023년 12.5%로 상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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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가격경쟁 본격화’는 전기차 기업들을 긴장케 하는 요소가 된다. 수요 둔화와 과잉 경쟁은 통상적으로 시장을 가격경쟁으로 내몬다. 공급과잉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등 가격이 급락했고, 배터리 가격도 조정되고 있다. 테슬라, 폭스바겐 등 세계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내리고 있다. 특히, 가격경쟁을 부추긴 중국의 역할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최근 샤오미는 800㎞의 주행능력을 가진 전기차 ‘SU7’을 5000만원대에 출시했고, 비야디(BYD)의 SUV ‘아토3’는 220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 내수시장이 과잉공급의 난을 겪고 있어 대응 전략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국 등 주요 시장에서 성능 인증 평가를 받고, 현지 조직 인력을 채용해 나가고 있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려면
전기차 산업이 성장통을 겪는 모습이다. 어쩌면 성장해 나가는 데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평가된다. 캐즘을 건너는 전기차 기업이 있고, 건너지 못하고 떨어지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잉 경쟁화 되다가 산업 구조조정을 겪는다. 이 과정을 지나면 다시 정상화되는 국면이 찾아오는 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캐즘을 건너는 일이다. 첫째, 캐즘을 건너기 위해서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 출시에 집중해야 한다. 초기 시장은 상대적으로 기술이나 품질이 중요했겠지만 주류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SW(소프트웨어) 차별화를 추진해야 한다. 저가형 전기차를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더할 서비스를 강화하고 그것이 보급형 전기차 속에 차별화된 소구 포인트가 되도록 해야 하겠다. 셋째,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전기차의 경쟁력은 곧 배터리 경쟁력이다. 저렴하고 안전하며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배터리를 확보하는 것이 주류시장을 장악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재 확보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가 캐즘을 건너 광범위한 시장으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배터리 핵심 소재가 다시 공급 부족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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