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학 위상을 높인 세계적인 수학자인 권경환 포스텍 명예교수가 지난 3월 29일 오전(미국 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5세.
고인은 위상수학 분야에서 다양체(manifold) 연구를 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연구성과를 도출하고 우리나라 수학 교육과 연구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1952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이학사를 마치고 1958년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포스텍의 초청으로 귀국해 1999년까지 포스텍 수학과 교수 및 학과장으로 재직하며 연구와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 위상수학 다양체 연구를 통한 세계적 업적 도출과 포스텍 수학과 발전 등에 대한 기여 등 우리나라 수학 발전에 남긴 업적과 공로로 2018년 대한민국 정부 지정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됐다.
고인의 연구분야는 위상수학 가운데 기하위상수학(geometric topology)이다. 위상수학은 수학적 공간의 구조를 연구하는 분야다. 20세기 이후 현대 수학의 핵심 분야로 꼽힌다. 다양체는 위상수학에서 “국소적으로 유클리드 공간과 동등한 모습을 갖는 수학적 공간”으로 정의되며 현대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위상수학에서 기존의 다른 수학적 대상으로부터 다양체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와 이것을 분해하면 어떤 수학적 대상으로 나눌 수 있는지 규정하는 것이 연구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 과제다.
고인은 1964년 “Product of Euclidian Spaces Modulo an Arc”(Annals of Mathematics 79-2)라는 논문을 통해 이에 대한 연구를 크게 진척시켰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다양체인 유클리드 공간이 다양체가 아닌 두 공간의 곱으로 분해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1965년에 발표한 “Product and Sum Theorems for Whitehead Torsion”(Annals of Mathematics 82-2)에서는 다양체의 본질적 불변량(invariant) 중 하나인 “화이트헤드 토션”이 더하기나 곱하기와 같은 연산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검토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연구는 이후의 위상수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이후 고인은 본격적으로 다양체를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 성과로 “부분적으로 선형성을 가지는 PL 다양체”라는 범주를 분류해 내고, 그 특성을 밝혔다.
고인의 연구결과는 수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Annals of Mathematics 등에 게재되어 당대와 후대의 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발간한 40여 편의 논문은 위상수학이라는 전문 분야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평균 4.4회의 인용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가 주도한 연구에 함께 참여한 제자들도 대부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교편을 잡고 위상수학 분야의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고인은 1990년 신생 대학인 포스텍의 초청을 받아들여 한국으로 돌아왔고 미시간주립대 수학과의 성장을 이끈 경륜을 바탕으로 포스텍 수학과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999년 퇴직하며 한국 수학 발전과 후진 양성을 위해 ‘권경환 석좌기금’을 출연했다. 이후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포스텍의 발전을 위해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