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최근 구설에 오른 건 기후정의의 상징적 장면이다. 스위프트는 2월 11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이 조금 넘어서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 즉 ‘슈퍼볼’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슈퍼볼 우승 트로피는 스위프트의 연인 트래비스 켈시가 소속된 캔자스시티에 돌아갔다. 캔자스시티가 승리한 뒤 시상식장에 내려와 그가 켈시와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전 세계 매체에 보도됐다.
스위프트의 ‘사랑꾼’ 행각은 켈시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었겠지만 대중의 눈엔 논란이 됐다. 스위프트는 10일 오후 6시(현지시간) 도쿄돔에서 시작한 콘서트를 3시간 30분가량 진행하고 한 시간 만에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자신의 전용기 다소 브레게 미스테르 팰콘 900을 타고 곧 바로 연인의 슈퍼볼을 보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4000만 달러짜리 전용기로 이동한 거리는 약 8900㎞로 며칠 뒤인 16일 호주 공연을 위해 움직인 것까지 합치면 연료로 약 3만3000ℓ를 썼다. 이에 따른 탄소 배출량은 약 90톤. 워싱턴포스트(WP)는 “(스위프트의 전용기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이) 올해 내내 평균적인 미국인 6명이 배출한 탄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라고 했다.
스위프트 측은 전용기 사용으로 배출한 탄소를 상쇄하기 위해 배출권 구매 등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려는 부유층의 무절제한 낭비나 과시형 소비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소비에 따른 탄소 과다 배출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한다. 부유층의 과거 과소비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고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현재의 과소비에 따른 탄소 과다 배출은 타인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친다는 데서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문제가 된다.
2020년 옥스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0~2015년 기준 전 세계 상위 1% 부유층(6300만명)이 소비활동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에서 15%를 차지했다. 범위를 상위 10%(6억3000만명)로 넓히면 비중이 52%였다. 소득 하위 50%(31억명)가 배출한 탄소는 전체 중 7%에 불과했다. 소득 상위 1%가 소득 하위 50%에 비해 두 배 넘는 탄소를 뿜어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새로운 글로벌 의제를 제시한다. 기후정의다.
탄소불평등은 부동산이나 소득·자산 불평등과 완전히 다르고 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불평등이 편익의 편중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비용으로 직결하고, 게다가 비용을 치를 능력이 부족할수록 더 큰 비용을 치르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나 집단, 국가는 편익을 누리지도 못한다.
윤리적 관점을 논외로 하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스위프트가 전용기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을 배출권 구입으로 상쇄했다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양식은 지킨 셈이다. 반면 전용기 900대가량을 몰고 온 부자들이 대중의 감시에 노출된 스위프트처럼 상쇄의 길을 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전용기 사용이 슈퍼볼에만 국한한 사안이 아니고 탄소불평등이 전용기 사용에만 국한하지도 않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기념비적 저서로 기후변화 담론을 세계에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앨 고어가 탄소불평등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로 10여년 전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미국 명문가 출신인 고어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거실 20개와 욕실 8개가 있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논란이 된 건 고어 부부가 사는 내슈빌 대저택의 전기요금이었다. 미국인 가정의 평균 전기 사용량에 비해 약 20배 많은 전력을 썼다는 사실이 폭로돼 한동안 이중성이 도마에 올랐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진보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는 스위프트 또한 탄소 과다 배출과 관련한 공격을 종종 받는다. 미국 보수 정치평론가 앤 콜터가 “그렇다.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서 이라크를 침공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이 자가용 비행기와 리무진을 타고 다닐 것이 아니냐”고 한때 할리우드를 겨냥해 일갈한 적이 있다. 콜터의 경구가 당시 민주당 진영을 공격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부유층의 탄소 과다 배출을 꼬집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라크 침공을 그렇게 쉽게 정당화하거나 희화화해서는 안 됐다.
■세계적 규모의 탄소불평등
탄소불평등에 기반한 기후정의 문제는 국민국가의 국경을 넘어선다. 주지하듯 주로 선진국에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국경 안에 머물지 않고 북극·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들쑤시고 다니기 때문이다.
국제개발센터(CDG)의 기후위기 취약국가 종합순위는 중국, 인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적도기니, 브룬디, 수단, 방글라데시, 르완다, 세네갈, 나미비아 순으로 1~10위였다. 10위권에 OECD 국가는 한 나라도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를 빼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하위권에 속한다. 온실가스는 적게 배출하고 피해는 많이 보는 국가들에서 목격되는 불평등과 부정의가 기후정의의 핵심 쟁점이다.
대표적으로 탄소 저배출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2022년 여름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규모 홍수가 일어나 국토가 3분의 1이나 잠기는 재앙을 당했다. 이에 따라 그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기후변화 피해를 당한 중저소득 국가에 선진국이 보상하는 ‘손실과 피해’ 보상 기금 마련에 합의했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국가별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관한 구체적 합의가 쉽지 않겠지만 지구촌 차원에서 탄소불평등을 인정하며 기후정의를 위한 국제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적용하기 쉽지 않은 CBDR 원칙
1992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 선언’에 명시된 CBDR(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원칙은 공동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국가 간에는 차별적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역사적 책임의 차이와 환경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여 국제의무를 차별화하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CBDR 원칙을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파키스탄에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보상한다고 할 때 국가별로 어떻게 차별적 책임을 부과할 것인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지금 전 세계에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중 인간이 인위적으로 배출한 것은 산업화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쌓인 것으로, 누적 배출량은 미국이 1위지만 현재 배출량은 중국이 1위다. ‘차별적 책임’을 산정할 때 현재의 책임과 현재완료의 책임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국가 간에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까. 더구나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두 나라가 다름 아닌 중국과 미국이다.
기후정의는 이처럼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더 문제가 되기에 해법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위기는 글로벌하지만 의사 결정이 국민국가 수준에 맡겨져 있다는 근본적인 거버넌스의 한계 때문이다.
기후정의는 20세기 말에 들어 인류가 처음으로 자각한 전혀 새로운 문제지만 이 문제는 인류가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 목록 최상단에 위치한다. 그전까지 지구촌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작동하는 환경정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했다. 환경정의도 레이철 카슨 등이 활약한 20세기 중반에 등장했으니 비교적 새로운 의제였다.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했지만, 국가가 개입하여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더라도 환경정의에 관해선 나름 해법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기후정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마련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환경정의와 달리 해법 마련 가능성을 어둡게 한다. 그나마 글로벌 거버넌스라고 존재하는 유엔이라는 것이 세계정부와는 한참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한 국민국가 체제는 결국 기후위기라는 글로벌 의제를 해결하는 데 바람직한 시스템이 아닌 것이 밝혀질 테고, 기후정의는 기후위기의 심화 속에서 표류하다가 과거 유행한 세계시민이란 말처럼 폐허 속에서 실현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통한의 개념으로 후세가 곱씹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가. 공동의, 그리고 차별적 재앙이 본격화하고 있어서 낙관론을 살리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한다.
자료 도움: 박예린(경기연구원 연구원)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