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로 환경단체와 친환경제품 생산업체들이 반발하는 등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29일 국회 앞에서는 종이빨대를 바닥에 버리는 퍼포먼스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종이빨대생존대책협의회,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 등이 환경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에 따른 친환경제품 생산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벌인 행사였다.
▲온라인 음식서비스 시장의 폭발적 성장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고 음식 배달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음식의 온라인 구매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음식서비스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통계청이 공식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2조7326억원에서 2018년 5조2628억원, 2019년 9조7353억원, 2020년 17조3370억원, 2021년 26조1597억원, 2022년 26조5940억원으로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였지만 짧은 기간에 시장이 말 그대로 폭발했다. 5년 사이에 약 10배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배달앱 빅3인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가 주도했다. 배달의민족이 시장점유율 과반을 기록하고 있고 빅3가 사실상 시장 전체를 과점한 상태다.
온라인 음식배달 시장의 성장은 언론에 오르내리기로는 배달 용기 쓰레기가 매일 830만개 발생한다는 새로운 사회문제를 낳았다. 배달앱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없던 새로운 종류의 쓰레기다. 물론 기존 방문 식당에서도 일부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전면적인 온라인 음식배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숫자는 일회용 배달에 들어가는 용기를 3개로 계산하였기에 실제 배출되는 배달 용기 쓰레기는 상식적으로 하루 1000만개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으로는 36억개 넘는 배달 용기 쓰레기가 코로나19 이후 사회 곳곳에서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녹색연합이 2021년 4월 시행한 ’배달쓰레기에 관한 시민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2%가 ’마음이 불편하거나 걱정이 된다‘, 34%가 ’죄책감이 든다‘고 답했다. 배달쓰레기 처리대책 중 가장 시급한 것으로는 40%가 다회용기 사용 확대, 33%가 일회용기 감소를 위한 규제를 들었다.
일회용기 규제가 미뤄지고 있어서 현실적인 배달쓰레기 저감 대책은 다회용기 사용 확대밖에는 없다. 그러나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주경제 2023년 3월 23일자 《배달앱 '다회용기' 써보니···서비스 업체 적고 이용 불가 메뉴도》 기사를 보면 이용자가 다회용기에 담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게 꽤 어렵고 불편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녹색연합은 2022년 11월 17일 보도자료에서 배달음식 다회용기 서비스가 하루 60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회용품이 음식배달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최근 환경부가 규제를 완화한 고객 방문 매장에서도 일회용품은 넘쳐난다. 골목마다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매장 내 취식보다는 테이크아웃 비율이 더 높아 일회용품 쓰레기가 줄어들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배달이나 테이크아웃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게 하는 것만이 이 문제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해답이다.
▲독일의 판트(Pfand) 제도
’판트 제도‘는 독일의 공병 보증금 제도다. 판트는 보증금 혹은 예치금을 뜻하는 독일어다. 유리병, 페트병, 캔과 같은 빈 병을 무인회수기에 반납하면 개수에 따라 돈을 환급해 준다.
독일은 2022년 1월 1일 포장재법을 개정하여 같은 해 7월 3일 전면 시행에 들어가 모든 음료 포장재가 판트 적용 대상이 됐다. 우유와 유제품 포장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더 두어서 2024년 판트 제도를 적용할 예정이다.
판트제도가 시행되면서 소비자는 생수나 탄산수 같은 음료를 사면서 제품 가격 외에 최소 제품당 0.25유로의 보증금(판트)을 같이 결제한다. 상품 가격과 판트가 계산서에 따로 표시된다. 소비자가 나중에 판트기계에 빈병 혹은 용기를 반납하면 미리 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독일 포장재법 주요 개정 사항엔 판트 제도 외에 케이터링, 배달서비스,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테이크아웃 시 재사용 가능한 포장재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 포함된다. 즉 우리나라처럼 일회용기에 담아서 음식을 배달하거나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2023년 1월 1일 시행에 들어간 개정안은 노동자 5명 이하 소기업과 사업면적 80㎡ 이하 영업장에 대해 예외로 두었지만 이러한 소규모 상점에서도 소비자가 다회용기에 포장해 달라고 요청하면 응해야 한다.
판트 제도,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시 다회용기 의무화 등 선도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독일은 재활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이름을 올렸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약 46%에 달하고 병 하나당 재사용 횟수가 40회 이상이며 재사용률은 95%다.
▲라라워시 등 한국 다회용기 사업
한국은 최근 환경부 조치에서 보듯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방침과 무관하게 다회용기 사업은 국내에서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경기도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하는 라라워시를 비롯하여 7개 업체가 사업을 하고 있다. 공공 영역에 속한 라라워시와 사회적 기업인 레빗 외에 나머지 5곳은 영리기업으로 신진마스타와 프라임 두 곳의 연간 매출이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다회용기 사업은 다회용기 공급과 수거·세척, 세척 후 재공급 구조로 이루어진다. 내용상 세척이 사업의 핵심을 이룬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단체급식 시설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이 발표한 ‘기업의 다회용기 세척서비스 지불의사가격(WTP, Willingness To Pay)’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식기 1개당 WTP는 2018년 약 70원 수준에서 2020년 약 200원까지 올랐다. 잠재 고객의 WTP는 상승하고, 서비스 원가는 떨어지는 추세여서 다회용기 세척서비스 시장은 지속해서 확대될 것으로 삼성증권은 전망했다.
다회용기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온실가스를 감축에 기여한다. 말 그대로 다회 사용했을 때 환경적으로 다회용기가 우위에 선다. 아주대 ESG센터의 전과정평가(LCA) 결과 일회용컵의 탄소발자국은 100gCO₂e로 다회용컵을 1회만 사용했을 때 248gCO₂e에 비해 탄소발자국이 낮았다. 텀블러와 비교하면 마찬가지로 일회용컵이 더 환경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회용컵을 3회 이상만 사용하면 다회용컵이 일회용컵보다 환경적으로 우수했고 사용 횟수가 많아질수록 당연히 환경성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10회 사용 시 다회용컵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회용컵의 40%였다. 국내에서 일회용컵이 연간 53억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회용기 보급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라라워시는 2018년 11월 성남점을 시작으로 현재 경기도 내에 17개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다. 다회용기 보급과 자활을 결합한 일종의 공공사업이어서 도비 지원을 받는다. 현재 일자리 219개를 창출했고, 올해 3분기까지 매출을 약 13억원 올렸다. 최선린 경기광역자활센터 부장은 “경기도 내 모든 기초지자체로 사업단을 확대하여 일자리 창출과 온실가스 감축,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을 동시에 꾀하는 바람직한 공공사업 모델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회용기 확산을 위해서는 공공 영역의 우선 사용을 비롯해 제도와 관행 개선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더불어 다회용기 자체를 재활용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는 음식물을 담는 용기여서 재활용플라스틱 사용을 기계적으로 금지한 상태다.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며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다회용기를 만드는 건 지양하면 좋겠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