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은 ‘국제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이다. 2015년 11월 6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맹그로브 숲 보존을 위해 매년 7월 26일을 맹그로브 생태계 보존의 날로 지정하였다. 유엔에서 기념일을 지정한 까닭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맹그로브가 지구온난화 속도를 늦추고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뜻이겠다.
◆새로이 각광받는 맹그로브=맹그로브 숲은 조간대에 있다. 조간대는 만조 때 해안선과 간조 때 해안선 사이의 땅으로 대체로 염습지다. 육지와 바다 각각에 인간의 피부에 해당한다. 맹그로브는 다른 대부분 나무와 달리 바닷물에서 생장할 수 있다. 맹그로브 뿌리는 음전하(-)를 띠고 있어서 염화 이온(Cl-)은 밀어내고 나트륨 이온(Na+)은 끌어당겨 뿌리 표면에 달라붙게 만든다. 이런 연유로 바닷물 속에 있어도 염분(NaCl)이 뿌리 안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물만 빨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염분이 90% 이상 뿌리에서 걸러지고 나머지는 잎에서 소금 덩어리로 배출된다. 맹그로브가 바닷물에서 소금을 걸러내는 방식은 담수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한다.
지구상에 100종 가까운 맹그로브가 존재하며 사람 키 정도에서 물 위로 40m나 자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모든 맹그로브는 물이 천천히 흘러 세립질 저질(底質)이 쌓일 수 있는 저산소 토양에서 서식한다. 산호와 마찬가지로 낮은 온도를 싫어해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자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의 면적은 1480만헥타르(㏊)다. 아시아가 555만㏊로 가장 넓고, 아프리카(324만㏊), 북아메리카 및 중앙아메리카(255만㏊), 남아메리카(212만㏊), 오세아니아(126만㏊) 순으로 분포한다. 기온이 낮은 유럽과 남극대륙에는 맹그로브 숲이 없다. 세계 맹그로브 숲의 40% 이상이 인도네시아(19%), 브라질(9%), 나이지리아(7%), 멕시코(6%)에 있다.
맹그로브 숲은 두꺼운 뿌리가 땅속 깊이 자리할 뿐 아니라 서로 빽빽하게 엉켜 있어 매우 안정적이다. 숲이 해안선의 변화에 조응해 아주 느린 속도지만 같이 이동하기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시대에 천연 제방으로 거론된다.
복잡하게 뒤엉킨 맹그로브 숲의 뿌리 체계는 수중에서 질산염·인산염 등 많은 오염 물질을 걸러낸다.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수질을 개선하는 천연 필터인 셈이다. 많은 물고기와 생명종이 음식과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맹그로브 숲이 조성된 바닷가는 그렇지 않은 바닷가에 비해 어획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라진 맹그로브 숲, 가라앉는 도시=그러나 그동안 맹그로브 숲의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맹그로브 숲을 보유한 인도네시아는 인구 대국이기도 하다. 경제 개발에 따라 무분별하게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거나 개간되었다. 2015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 맹그로브 숲의 약 40%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맹그로브 숲이 있던 자리에 주거지나 물새우와 밀크피시 양식장이 들어섰다.
방파제 및 천연 제방 역할을 하던 맹그로브 숲이 사라지고 해수면 상승과 대규모 지하수 개발이 겹치면서 인도네시아가 가라앉고 있다. 특히 수도인 자바섬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라앉는 도시가 됐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인구 과밀인 자카르타는 매년 지반이 내려앉아 현재 도시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2019년 8월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하고 2년 반이 지난 지난해 1월 새 수도 명칭을 누산타라(Nusantara)로 발표했다. 서둘러 수도를 옮겨야 할 정도로 자카르타 상황이 심각하다. 강우나 홍수와 무관한 자카르타의 침수 모습은 종종 언론 보도로 전해진다. 당연히 맹그로브 숲이 사라진 이유만으로 자카르타가 가라앉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반 침하 이유에서 맹그로브 숲의 파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태국에서도 맹그로브 숲의 손실이 심각하다. 3100㎞에 이르는 긴 해안을 보유한 태국은 전체 해안 중 약 4분의 1인 700㎞가량이 심각한 침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태국 해안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던 맹그로브 숲이 줄어들면서 해안 침식이 더 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과 태국 정부가 조사한 결과 1961~2000년 사이 태국 해안의 맹그로브 숲 3분의 1이 증발했다.
맹그로브 숲이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서부 해안의 40㎞ 지점에서 발생한 매그니튜드 9.1~9.3의 초대형 해저 지진. 이 지짐으로 30만명 이상이 숨지고 5만명이 실종됐으며 170만명가량 난민이 생겼다. 사망·실종 피해 대부분은 쓰나미 때문이었다. 재앙이 지나간 후 맹그로브 숲이 온전한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피해가 눈에 띌 정도로 작은 것이 확인되며 맹그로브 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맹그로브의 천연 제방 효과는 미국에서도 확인됐다. 2017년 허리케인 어마가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했을 때 그곳의 맹그로브 숲이 50만명 이상을 보호했고 15억 달러의 직접적인 홍수 피해를 방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지구온난화 시대의 총아=맹그로브 숲은 자신의 몸(바이오매스)과 뿌리내린 해양 진흙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한다. 유엔 ‘적도 이니셔티브’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 1㏊당 1500톤 이상의 탄소가 그 아래에 저장되어 있다. 육지 숲보다 8배 많은 양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맹그로브 숲과 연안습지는 열대림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탄소를 격리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은 탄소를 제거하는 맹그로브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맹그로브 숲은 지구온난화 시대에 매우 중요한 탄소 저장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유엔은 맹그로브가 격리한 탄소를 ‘블루카본’으로 정의했다. 2009년 유엔 보고서 <블루카본-건강한 해양의 탄소 포집 역할>에서 처음 언급된 블루카본은 어패류, 잘피, 염생식물 등 바닷가에 서식하는 생물과 맹그로브 숲, 염습지 등 해양 생태계가 흡수한 탄소를 뜻한다. 탄소 흡수 속도가 육상 생태계보다 최대 50배 이상 빠르고 탄소를 수천 년간 격리·저장할 수 있다. 지구의 탄소는 블루카본, 블랙카본, 그린카본 등 3가지로 구분하는데 블랙카본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나 나무 등이 불완전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탄소를 가리키며, 그린카본은 열대우림과 침엽수림 등 육상 생태계가 흡수한 탄소다.
연안의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면 탄소 격리 능력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맹그로브가 이미 격리해 몸에 저장한 탄소를 방출하는 이중의 피해를 유발한다. 이에 따라 맹그로브 숲 보존이 국제적 관심사로 급부상하게 된다.
맹그로브 파괴로 위기에 직면한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10개국은 ‘미래를 위한 맹그로브’ 프로젝트를 통해 숲 복원에 나섰다. 특히 수도의 지반 침하 문제를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가개발계획청은 2045년까지 시행할 맹그로브 보존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맹그로브 복원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방글라데시(60%)와 인도(40%)에 걸친 세계적으로 큰 맹그로브 숲 중 하나인 순다르반 지역(140만㏊)의 맹그로브 숲 복원사업은 ‘아시아의 허파 재생’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맹그로브 액션 프로젝트’는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을 보존하고 복원하기 위해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단체다. 이 단체는 건강한 맹그로브 숲이 특히 가난한 해안 지역사회에 지속 가능한 삶을 제공하고 자연재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지역민이 복구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사회 기반 맹그로브 복원(CBEMR)’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기업도 맹글로브 숲 복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애플은 콜롬비아 카리브해 연안에 맹그로브 군락지 조성 사업을 벌여 1만1000㏊를 복원 중이다. 이 사업으로 1만7000톤의 탄소를 흡수해 자사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계획이다. 케냐 해양수산연구소는 가지만 일대에서 지역민과 협력하여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고 여기서 생긴 탄소배출권 수익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어스온이 2018년부터 베트남 미얀마 해변 136SK어스온에 맹그로브 묘목 53만그루를 심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KB국민카드는 인도네시아 해안에 맹그로브 묘목을 식재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맹그로브 숲을 조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맹그로브 서식 북방한계선이 계속 올라가면서 조만간 우리나라 남쪽에 맹그로브를 심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적 풍경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 26종, 일본에 6종의 맹그로브가 서식하고 있다. 한국에 맹그로브가 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온난화 추세가 계속되면 맹그로브 중에서 추위에 강한 종이 우리나라에 자리 잡을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지게 되고, 더불어 한국으로서는 지구온난화 대응의 선택지가 늘어나게 된다. 좋을 일일까. 우리나라 남쪽 갯벌에 맹그로브 숲이 조성된 이색 풍경을 만일 보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사)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