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열풍의 키워드 중 하나는 '이민계'다. 세계 AI 반도체 업계는 공교롭게도 '대만계'가 꽉 쥐고 있다. 전 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올라선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 이 회사의 든든한 파트너사인 TSMC의 창업주 모리스 창, 경쟁사 AMD의 수장 리사 수 등은 모두 대만 출신이다. 이들은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인도계' 활약이 눈에 띈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와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엔지니어로 일하며 빅테크 기업 수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충분히 잠재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젠슨 황은 AMD의 엔지니어로 초창기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모리스 창과 리사 수 역시 비슷한 이력이 있다. 인도계 CEO들 역시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인 실무에 뛰어들었다. 기본기를 쌓은 이들이 이룩한 결과물은 현재 AI 열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 미국 등 주요국들은 경쟁적으로 AI와 반도체 분야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만은 전국 수재들을 곧장 반도체 분야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욱이 최근 대만은 '해외 우수 인력' 흡수를 위해 세제 혜택과 체류 요건 완화 등을 꺼내 들었다. 석·박사를 거친 우수한 해외 인재를 데려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일본, 독일, 영국 등도 인재 유치를 위해 체류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AI 선두 국가인 미국도 마냥 한가롭지만은 않다. 미국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상위 20% 고급 AI 연구자 중 47%가 중국 출신일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18%, 한국은 2%에 그쳤다. 이에 미국도 반도체법 발표 뒤 반도체 기술 인재에 대한 이민 허들 낮추기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도 관련 지원법을 통과시키고 반도체 등 첨단 인재 육성 계획을 밝혔다. 다만 업계를 주도할 만큼 '차별적' 지원 대책이 나온 건 아니란 평가가 많다. 매년 약 1600명의 인력이 필요한 국내 반도체 업계에 매년 대학에서 수혈되는 인력은 650명 정도에 불과하고 석·박사급 핵심 인재는 150명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해외 인력을 유치하기 위한 비자 혜택도 다소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치열한 인재 유치 경쟁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