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2050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은 지역정의 구현할 절호의 기회

2024-03-2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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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대통령만 어떻게든 설득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한동훈 비대위원장까지 나서서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냐’고 되묻는 데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점차 국민 상식이 되어가는 ‘RE100’을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건지 우려스럽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의 어처구니없는 경험이 RE100 문제에서도 반복된다면 그 여파는 거의 회복하기 불가능한 항구적인 타격을 한국 경제에 입힐 것이다. RE100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클라이밋그룹이 나서서 한국을 ‘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장 어려운 나라’로 규정하면서 익히 알려진 맞춤형 처방까지 제시해주었다. 핵심은 역시 재생에너지 비중을 탄소중립 2050에 맞추어 높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하여 ‘반도체 동맹’을 맺은 노광장비 업체 ASML도 최근 고객사에 RE100을 요구할 것임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제 한국 반도체산업은 RE100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술혁신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려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도 없고 수출할 수도 없게 되었다. “조 단위가 걸린 문제” “그린피스보다 더 급하다”는 삼성전자 측 반응이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모든 나라가 재생에너지를 확충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동안 한국은 태양광 신규 설치 용량을 2021년 4.2기가와트(GW)에서 2022년 3.0GW, 2023년 2.5GW로 줄였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원전으로 재생에너지를 대신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탈원전하게 되면 반도체산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지난 1월 민생토론회 발언은 대통령의 원전 편향적 과욕을 표현할 뿐이다. 이 왜곡된 사실관계가 교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탄소중립 비전에는 암운이 드리울 뿐이다.
환경위기에 대한 인간과 인류의 인식과 대응의 역사는 세대 간, 국가 간, 계층 간 환경 정의가 확대되는 과정이다. 환경위기에 대응하는 기본원칙으로서 ‘유발자 책임 원칙’이 갈수록 뚜렷하게 관철되는 과정이다. 열쇠말(Key Word) 역시 문제 인식과 대응 방안의 초점이 변하면서 환경보호, 환경위기, 생태위기,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탄소중립 등으로 변천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략적으로 자유시장경제 미국과 사회적 시장경제 유럽의 인식과 대응에서 차이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어떤 가치관이 지배하는지에 따라 인간사회와 생태계의 관계 설정에서 차이가 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우세한 미국 사회에서는 생태계를 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우위에 있게 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 소극적이다. 반면에 탈물질주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 사회에서는 생태계 보존에 대한 관심이 강하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헌법상 경제질서로 가졌음에도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생태주의가 자리 잡을 여지가 매우 좁다. 최근 22대 총선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서울역사 지하화 같은 지역개발 공약이 넘쳐나는 것은 이러한 성향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한국은 기후위기에 관한 국제 논의에서 후진국 위치에 서서 의무를 최소화하는 데 진력했다. 지난 정부 말에 겨우 등 떠밀려 가까스로 탄소중립 2050 비전에서 선진국에 접근하는 선언을 했지만 이마저도 정권교체로 인해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경제가 ‘탄소중립 2050’으로 명명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결코 놓칠 수 없는 가치가 지역 균형 발전으로서 지역정의이다. 비단 헌법적 가치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대등한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도 지역정의는 한국판 탄소중립 2050의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당위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수도권 집중과 경부축 중심으로 대표되는 지역불균형은 시장에만 맡길 경우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경부축 중심이라는 성격 규정이 무색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은 수도권 집중 완화를 통한 전국적인 균형 발전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방 소멸을 차단하는 것이 지역정의의 구현이다. 탄소중립 2050의 에너지 전환은 지역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에너지 효율성 측면뿐만 아니라 에너지안보, 경제안보 관점에서도 지역정의는 한국형 정의로운 전환의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로 대표되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굴은 물론 새로운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연구개발에서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체 과정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면 ‘탈원전’을 이데올로기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원전 중심’을 이데올로기화하는 자기모순에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할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조건 재생에너지 생산 기반을 크게 확충하는 것이다,

탄소중립 2050 글로벌 비전에서 한국이 ‘선도국가’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뒷받침하는 정의의 가치에서도 뚜렷한 색깔을 낼 수 있어야 한다. 1980년 ‘에너지 전환’ 개념을 창시한 독일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오늘날 디지털 전환을 뜻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독일 경제의 장기비전을 규정하는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작금의 독일 경제 위기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독일의 양대 ‘전환’의 시의성과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 작금의 독일 경제의 위기는 성공적인 양대 전환 과정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맞게 된 우발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전환과 ‘원전 없는’ 에너지 전환을 지탱해주던 ‘저렴한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이 무너지면서 두 전환 모두 지체되게 되었다. 대한민국 경제가 ‘선도국가’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동행할 국가를 선정할 때 자유, 정의, 연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접근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적이고 회복 능력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정한 전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생태적 필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도전에 대등하게 대처하되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 전환의 목표는 ‘기후 정의’를 달성하는 것이고 필요한 구조 전환을 실행할 때 개인, 국가, 지역, 미래 세대 등 누구도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전환기에 거의 법칙적으로 발생하는 빈곤 심화 현상은 ‘보충성의 원리’에 입각한 소득정책적 접근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이 요구하는 에너지산업구조의 전환은 물론 탄소집약적 산업의 퇴출에 수반되는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의 일상화 및 장기화에 대한 대처가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때 당연히 재생에너지 배송에서처럼 디지털 전환이 열어주는 새로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동시에 고용의 창출 및 안정화를 달성하고 이를 뒷받침할 노동시간의 내부유연화를 설계하는 데 사회적 역량을 모을 때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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