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추모비 해체가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2024-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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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오가타 요시히로 교수]



지난 2월 2일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에 있는 현립공원 ‘군마의 숲’의 조선인(한인) 추모비가 강제 철거됐다. 추모비를 관리하는 시민단체와 추모비 철거를 요구하는 군마현 간에 법정 다툼이 계속되어 왔지만 군마현이 지난 1월 29일부터 ‘강제 대집행’이라는 조치로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이 추모비는 일본강점기에 한반도에서 끌려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2004년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을 부정하는 우익 단체들이 이 추모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우익 단체들은 매년 거행된 추도식을 보도한 과거 신문기사 등을 조사해 “조선인들이··· 전쟁 중 강제로 끌려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발언 등을 두고 “반일(反日)적이다” “거짓 사실이 회자되고 있다”고 문제시하며 추모비 철거를 요구했다. 군마현은 이러한 우익 단체 주장을 받아들여 추모비를 철거한 것이다.
물론 군마현이 공식적으로 우익 단체 주장을 인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군마현 지사는 “역사를 수정하려는 의도는 없다” “비문이나 설치 취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설치할 때 정한 규칙을 어긴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추모비가 설치되었을 때 협의한 문서에 '종교상 목적 및 정치상 목적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는데 추모행사 등에서 시민들 발언이 '정치적'이며 당초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2014년 군마현이 10년 단위로 허용되던 추모비 설치 허가 연장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자 이에 추모비를 관리하던 시민단체가 불허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마에바시(前橋) 지방법원에서는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2021년 도쿄(東京) 고등법원에서는 군마현 측 주장이 인정되어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2022년 대법원은 “행사에서 ‘강제연행’이라는 문구를 포함한 정치적 발언이 있었고, 추모비는 중립적 성격을 잃었다”고 판단하며 시민단체 측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는 “공익에 반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여기까지가 한계”라며 추모비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에 자주 과잉 반응을 보인다. 물론 무엇이 '강제'적이고 무엇이 '연행'인가 하는 용어의 정의가 모호하게 쓰일 때도 적지 않다. 역사 용어로서 뜻하는 바와 일반 사회에서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식민지배하에서 입은 피해가 역사적 사실로 존재하며, 그 사실은 지금까지 많은 전문가와 연구자, 시민들에 의해서 밝혀져 왔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역사수정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군마현 내에는 과거 다수의 광산과 군수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 한반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끌려왔다고 한다. 공식 통계기록이 확인되지는 않으나, 시민단체 조사에 의하면 현내 10여 곳에 약 4600명의 조선인이 끌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내 지하수로 공사를 맡은 기업의 사사(社史)에는 600여 명의 중국인과 1000여 명의 조선인이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군마현 의회도 조선인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2001년 6월 만장일치로 추모비 설치를 허용했을 것이다.
원래 조선인 강제노동 실태 조사를 진행하던 시민들은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생존자도 적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를 역사로 기록해 후세에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노역을 당한 조선인들의 고통을 애도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추모비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추모비를 세운다면 그 피해가 국가 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이상 공유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현립공원인 ‘군마의 숲’을 선택했다. 이 ‘군마의 숲’은 일본 육군의 화약제조소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1990년대는 일본에서 '증언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일본의 식민지배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무렵이고, 위안부 피해에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1992년)에 이어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가 발표되어 과거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그 책임을 어떻게 완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일본 사회가 과거사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추모비 설치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설치를 앞두고 군마현은 일본 외교부와도 협의해 비문 초안에 있던 '강제 연행'이라는 용어를 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어진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비문에서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을 '노무 동원'으로 바꾸면서 군마현 공공시설 내에 추모비를 설치하는 것에 간신히 성공했다. 그래도 추모비 설치는 군마현과 시민들, 그리고 일본 정부까지도 인정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2004년 추모비 제막식에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군마현 당시 지사와 자민당 군마현 간부 등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가 '증언의 시대'이자 일본 사회가 식민지배 책임에 대한 논의를 가장 심화시킨 시기였다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친 일본 사회는 '백래시(backlash·반동)의 시대'이자 '역사수정주의 대두의 시대'였다. 과거사를 직시하는 것은 '자학사관'이라고 조롱받게 되었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라는 역사수정주의자들에 의해 역사교과서 운동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중학교 검정 역사교과서 모두에서 언급하게 된 위안부 문제는 다시 모든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북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관심이 2010년대에 걸쳐 재일코리안을 향한 헤이트 크라임(hate crime·증오범죄), 그리고 혐한(嫌韓) 붐으로 이어졌다. 버블 경제 붕괴로 인해 '잃어버린 10년, 20년, 그리고 30년'으로 일본 사회가 정체의 시기로 치달았을 무렵의 일이다.
북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정치인으로서 영향력을 키워 간 것이 아베 신조(安倍晋三)였고, 역사수정주의의 대두를 배경으로 세력을 넓힌 것이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그러한 정치인들이 1990년대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보여준 식민지배 책임에 대한 반성의 자세를 약화시키려는 사회 분위기가 당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군마현 추모비를 둘러싼 백래시가 시작된 2012년은 2차 아베 정권 출범 무렵이었다. “추모비 내용은 엉터리다”라는 등 항의가 군마현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2012~2014년에 400건 이상 관련 민원이 들어왔다는 보도도 있다. 추모비 철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군마의 숲’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군마현은 “추모비는 존재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시위, 항의 활동 등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어 도시공원에 있어야 할 시설로 적합하지 않게 됐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군마현에 의한 추모비 설치 연장 불허 처분을 '적법'하다고 한 것일 뿐 '추모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철거 결정은 군마현의 판단이다.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는 추모비에 대해 현저하게 공익에 반한다면서 그 이유는 약속 위반이지 역사인식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수정주의 입장을 조장하게 될 결단을 내린 것이 사실이다.
2019년 군마현 지사에 취임한 야마모토는 자민당 전직 국회의원으로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고, 2차 아베 내각에서 각료를 지내는 등 요직에 있었던 정치인이다. 과거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놓고 “강제 연행을 보여줄 증거는 없었다”고 발언함으로써 마치 위안부 피해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일본 여론에 영향을 준 과거가 떠오른다.

군마현 추모비 철거 사건에 대해 자민당 국회의원 스기타 미오(杉田水脈)는 본인 SNS에 “정말 다행이에요. 일본 내에 있는 위안부와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추모비나 동상도 이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거짓 기념물은 일본에 필요 없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스기타는 자민당 아베파 의원으로 지금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비자금 문제로도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거듭되는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온 정치인이다. 인터넷상에 아이누 민족이나 재일코리안을 조롱하는 글을 올려 비판을 받았고, 일본 법무부에서 '인권 침해'로 경고를 받은 바가 있다. 하지만 자민당은 여전히 그를 중용하고, 야마모토 군마현 지사도 그의 발언을 두고 “개인으로서 신조”라며 비판하지 않았다.
과거부터 군마현과 비슷한 사례가 일본 각지에 있었고, 앞으로 그 영향 또한 우려된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나라(奈良) 덴리(天理)시 공원에 설치되어 있던 구 일본해군 항공대 기지 야나기모토(柳本) 비행장터 안내판의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이나 강제 연행으로 끌려와 힘든 노동 상황 속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기술이 문제시되어 결국 덴리시는 그 안내판을 2014년에 철거했다. 또 나가노(長野) 마쓰시로 조잔(松代象山) 지하호의 안내판에 적힌 '총 300만명의 주민들과 조선인들이 노동자로서 강제적으로 동원'이라는 문구 역시 문제시되었고, 나가노시는 2013년 '강제적으로'라는 글자를 흰 테이프로 가린 뒤 2014년 '꼭 모든 경우가 강제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문구를 추가한 안내판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 지사는 간토(関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에 추모문을 보내지 않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매년 9월 1일 도쿄도 위령당이 있는 요코아미초(横網町) 공원에서 추모 행사가 개최되는데, 역대 도쿄도 지사가 추모문을 보내던 것을 고이케 지사가 2017년 취임 이후 줄곧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고 고이케 지사는 설명하지만 간토대지진 희생자를 모두 똑같이 취급함으로써 학살의 사실에서는 눈을 돌리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특히 정치인의 발언이나 태도는 사회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도쿄도에서 작년 ‘도쿄도 인권 플라자’ 기획전에서 상영 예정이던 영상 작품에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언급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안 도쿄도 담당 부서는 “기획전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상영을 거절했다. 도쿄도 담당 직원이 고이케 도지사의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상영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는 사실도 나중에 밝혀졌다.

한편 후쿠오카(福岡)현 이즈카(飯塚)시는 탄광으로 번창한 지역으로 그곳에는 시가 운영하는 이즈카영원(飯塚霊園)이라는 공동묘지가 있고, 조선인 추모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영원 부지 내 ‘국제교류광장’에 ‘무궁화당’이라는 납골당이 2000년 12월에 설치되었다. 추모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시민과 이즈카시가 약 5년간 수십 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부지 일부를 무상으로 빌려주기로 합의하며 성사되었다. 무궁화당 앞에는 '수많은 조선인과 외국인이 일본 각지로 강제 연행되었습니다'라고 적힌 비문이 있고, 무궁화당 주위에는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 패널도 설치되어 있다. 이 시설도 2015년 우파 정치단체인 ‘일본회의’ 회원과 일부 주민들이 문제 삼았지만 시설을 건립한 시민단체와 이즈카시 간에는 지속적인 협의가 이루어져 지금까지 추모비 철거나 수정 등은 검토되지 않고 있다. 매년 가을에는 추모식도 열린다.
군마현 추모비는 포크레인 등 중장비로 흔적도 없이 분쇄돼 철거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역사적 사실까지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그렇듯 역사의 평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일한 사실(史實)은 존재한다. 추모비를 철거한다고 기억까지 지울 수는 없다. 우리 시민은 일본이나 한국/조선, 그리고 보수와 진보에 관계없이 사실을 기억하고 그것을 이어감으로써 역사수정주의에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모비에는 일본어와 함께 한글과 영어로 크게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과거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다지고자 이곳에 노무 동원으로 인한 조선인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한다. 이 비석에 담긴 우리의 마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더한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발전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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