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고용 지표가 예상치를 상회하는 고공 행진을 지속하면서 한국은행도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시점을 잡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상반기는 건너 뛰고 일러도 7월에 가서야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비등하는 상황이다. 이럴 경우 국내 기준금리는 역대 최고점에서 최장기 동결 기조가 이어지게 된다.
19일 한은에 따르면 오는 22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는 현 수준인 3.50%로 동결될 전망이다. 박춘섭 전 금통위원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새로 임명된 황건일 금통위원이 합류하는 첫 7인 완전체 회의다.
이번 금통위에서도 숨고르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다. 시카고선물거래소(CME) 페드워치는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을 89.5%로 본다. 1주일 새 5%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5월(64.4%)과 6월(25.8%) 금리 동결 전망도 한 주 전보다 각각 25.1%포인트와 18%포인트 높아졌다. 상반기 중 금리 인하 기대를 사실상 철회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연준의 피벗 가능성이 높게 제기됐다. 문제는 금리 인하의 필요 조건인 물가 하락세가 완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발표된 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 대비 0.9% 상승해 시장 전망치(0.6%)를 웃돌았다. 앞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2%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3.1%의 상승률을 보였다.
'끈적한(sticky)' 물가 흐름에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인사들은 "물가가 목표에 도달했다는 더 많은 증거를 보고 싶다"며 금리 인하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에 연계돼 움직이는 국내 금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역시 물가 지표가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최근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대에 들어서긴 했으나 2.8%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 여기에 고금리 환경에도 가계부채는 계속 불어나는 중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조기 피벗에 대한 시장 기대를 의식한 듯 "섣부른 금리 인하가 부동산과 부채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은이 상반기 중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경우 국내 기준금리는 역대 최고·최장 기록을 다시 쓰게 된다. 기존 최장 동결 기간은 지난 2016년 6월 9일부터 2017년 11월 30일(1년 5개월 21일)까지로 당시 기준금리는 1.25%였다. 현재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 13일부터 1년 1개월 이상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반기 들어 첫 금통위가 열리는 7월에 금리 인하가 시작된다면 종전 최장기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3.50%의 고금리가 1년 이상 이어진 것도 최초다. 이전에는 3.25%로 2011년 6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동결된 적이 있다.
피벗이 지연되면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 시장은 더 침체될 수 있다. 고강도 긴축 여파로 서민 가계의 소비 여력은 바닥을 보이는 실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춘 1.7%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도 연초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올해 민간소비 개선이 제약될 것으로 내다봤다.
부동산 업황 반등도 더 멀어진다. 고금리 장기화로 대출 차주의 비용 부담과 부실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관리 부담도 가중될 공산이 크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지난해 11월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한 이후 입장이 바뀐 게 없는 만큼 이달 금통위에서는 만장일치로 동결 결론이 나올 것"이라며 "상반기까지 금리 인하가 없을뿐더러 인하가 시작돼도 긴축 정책이 마무리되려면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