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60년 묵은 수출 공화국 패러다임… 바꿔야 산다

2024-01-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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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제조업의 대표 업종은 뭐니 뭐니 해도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200년 전쯤 영국은 처음으로 증기자동차 상용화에 성공하지만 붉은 깃발을 든 신호수를 둘 것을 규정해서 별명이 붙은 악명 높은 적기조례(Red Flag Act) 시행 이후 침체기에 빠진다. 1885년 독일의 벤츠(Carl Benz)는 휘발유 자동차를 발명하였고 1908년 미국에서는 포드(Ford)가 대량생산 기술을 도입하면서 독일과 미국 등이 선두로 나서게 된다. 1911년 지금의 닛산 자동차를 만들었고 전쟁용 군용차량에 특화한 일본과 1951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주도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중국, 그리고 1955년 미군 지프 엔진 등을 천막에서 조립해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한국 등이 주요 자동차 생산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총 36개국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2022년 세계 자동차 생산 8500만대 중에서 최대 생산국은 중국(2700만대, 비중 32%)이고 미국(1000만대, 12%), 일본(800만대, 9%), 인도(500만대, 6%), 한국과 독일이 각각 400만대(4%)로 그 뒤를 잇고 있다. 1985년부터 무려 40년 동안 생산되고 있는 쏘나타는 1990년대 초 일본 혼다를 경쟁 상대로 삼았다. 당시 쏘나타는 혼다보다 20% 이상 가격이 저렴했지만 혼다만큼 인기가 없었다. 최근 미국 등에서 한국 차가 많이 팔리는 것은 해외 소비자 인식이 크게 개선된 것을 방증하고 있다.
 
메이드 인 USA 하면 좋은 품질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 차는 인기가 별로 없다. 중국 자동차는 어떤가? 중국은 2023년 50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수출해서 430만대에 그친 일본을 2등으로 밀어냈다. 독일에 이어 한국은 280만대를 수출하여 4위를 기록했다.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개방정책 이후로 중국은 한국과 국교 수립(1992년), WTO 가입(2001년) 등을 거치면서 무섭게 발전했다. 폭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GM, 도요타, 혼다 등 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중국 투자 러시가 이어졌고 우리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볼보를 비롯한 외국 자동차 회사의 인수도 늘려 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의 자동차 생산 역량이 더 커져 중국 내 자동차 판매량 10위 중 중국 독자 브랜드 회사가 6개를 차지했다. 작년에는 판매가 부진했던 현대차가 중국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중국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BYD는 세계 전기차 수출에서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있다. 아직은 중국차가 일본차 가격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예전에 우리 자동차가 그랬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 1.4% 성장으로 고전했던 우리 경제는 금년에는 2.2% 성장을 기대하고 있으나 대내외 불확실성 속에서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내수 규모가 작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의 국제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 우리 수출은 작년에 7.4% 감소하였고 세계 7위로 두 단계 내려앉았다. 품목별 세계 시황의 부침이 크기 때문에 지역별 동향 분석이 의미가 있다. 우리 수출이 가장 큰 감소를 보인 것은 그동안 최대 수출 대상국이었던 중국에 대한 수출이 무려 19.9% 감소하였는데 중국 자체의 총수입 감소율 6.1%를 크게 웃도는 숫자이다. 그 결과는 줄곧 우리가 흑자를 보았던 대중 무역의 적자 전환으로 나타났다. 신남방정책의 중심인 대아세안과 대인도 수출도 각각 12.5%, 4.8% 감소하였고 대중남미, 대일 수출도 각각 7.4%, 5.1% 감소하였다. 우리 수출이 증가한 지역은 거의 유일하게 미국으로 5.4% 늘었고 유럽 수출은 전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상회하자 안미경미(安美經美)가 자리 잡고 있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미국은 중국의 대안 시장이 되고, 우리 수출은 괜찮은 것일까.

세계 최대 수입국인 미국의 수입 대상 1위였던 중국은 2023년(1~11월)에는 2위(2.6%포인트 감소: 16.5%→13.9%)로 밀려났고 북미 삼총사의 하나인 멕시코가 중국의 몫을 대부분 차지하였다 (1.5%포인트 증가: 14.0%→ 15.5%). 이어 독일이 0.7%포인트 증가(4.5%→ 5.2%)하였고 싱가포르가 0.4%포인트 증가하였다. 한편 한국은 0.1%포인트(3.6%→ 3.7%) 증가에 그치고 있다. 중국이 대미시장에서 잃은 파이를 한국이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제2위 수입국인 중국 시장도 비슷하다. 중국의 2023년 수입은 2022년에 비해서 6.1% 감소하였다. 2022년 3위였던 미국이 2023년에 1위로 올라선 사이 한국(1→2위), 일본(2→3위)이 밀려났다. 순위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대한국 수입이 -20.3%로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세계 최대 시장 1·2위인 미국과 중국 시장은 물론이고 각국에서 한·중 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우리와 중국은 우리 수출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 2% 이상(HS 2단위 기준)인 상위 10개 품목 중에서 8개나 겹치고 있고 그 비중은 70~80%나 된다. 세계 곳곳에서 한·중 간 경쟁이 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의 수출경쟁력 하락은 기초 체력의 문제와 더불어 전통적인 주력 업종의 세계 시황 및 중국의 경쟁력 상승이 주된 이유이다. 첫째, 수출을 좌우하는 종합적인 경쟁력 요인이 나빠지고 있다. 일자리와 일할 사람의 미스매치는 계속되고 인구 감소에 노령화는 진행되고 있다. 고비용 구조 속에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투자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각종 규제는 상존하고 경제의 역동성은 미약하다. 둘째, 우리 수출의 주력 업종의 국제 시황 변화가 심하고 중국의 상대적 경쟁력 상승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수출이 어렵고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때마다 수출부서의 담당자들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수출 총액을 전망하고 그 달성 여부에 일희일비하던 60년도 더 묵은 수출정책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경제가 어렵다고 경제부총리가 책임지지 않는 것은 그가 모든 변수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데 왜 수출의 경우는 그렇지 못할까. 사람이 부족하고 투자가 순환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적인 투입에 의존해 온 과거의 생산함수와 공급 주도형 수출 정책은 전면 개편되어야 한다.
 
정부는 이달 초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생태계 복원을 골자로 한 역동경제 회복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성장잠재력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수출경쟁력 회복이 기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 더 나아가 수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첫째,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출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야 한다. 정책 수단의 동원이 가능한 신시장과 험지 수출은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출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정책금융인 무역보험의 사용, 공공기관인 코트라를 통한 수출시장 개척, 통상교섭을 통해 새로운 국가와 FTA를 체결함으로써 신규 수출 목표를 정하고 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 그 연후에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그 책임을 묻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분야의 수출 부진에 대해서는 시황의 변화라든가, 중국의 상대적 경쟁력 상승에 따른 결과로 분발을 위한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이차전지, 바이오, AI 기반 디지털 등 첨단 분야에 대해서는 소관 부서를 정해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도록 하고 수출부서와 협력하여 수출로 이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이 분야는 미래의 핵심 경쟁력 배양과 연결되기 때문에 단기적인 수출 증가보다는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기술적인 부분은 논의를 거쳐서 마련하되 컨트롤 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수출 총액에 대해서 일부 부서가 책임을 지는 해묵은 수출정책 패러다임을 이제는 합리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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