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자원안보시대…공급망 관리와 전략적 비축 5가지 제안

2023-12-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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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목포 유달산에 있는 노적봉 바위를 이엉으로 둘러 군량미로 보이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조정은 양곡을 창고에 저장했다가 흉년 등 비상시에 푸는 구휼사업을 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오늘날 공공비축사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공공비축은 정부가 긴급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예전에는 주곡인 쌀이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지만 국민 생활에서 중요한 에너지와 반도체 등의 원료인 광물 등으로 중점이 바뀌었다. 에너지 중에서는 석유가 으뜸 비축 품목이다. 정부는 1970년대에 발생한 두 차례 석유파동 이후 석유비축사업을 추진해 왔고 120일분의 국내 소비를 충당할 수 있는 원유와 석유 제품을 비축하고 있고 천연가스, 석탄 등도 비축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 신산업의 필수적인 소재인 광물자원의 비축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자원전쟁이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에 공급망 컨트롤이 국제무역의 키워드가 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자원 확보에 열중하고 있다. 희소금속 등 주요 자원이 일부 국가에 편재된 상황에서 보호무역은 국제적 자원 이동을 더욱 왜곡시키고 비용을 올리고 있다. 요소수처럼 그동안 별 문제가 없던 것들마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2021년에 이어 금년에도 중국산 요소수 확보가 어려워진 것은 미국 주도의 쿼드(QUAD)에 참여한 호주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요소 생산에 필요한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줄인 데다 농업용 비료 확보를 위해 인도가 대량으로 사재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똥이 튄 우리나라는 긴급 물량 확보를 위해 베트남이나 중동산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가격은 급등하게 되었다. 몇 달 전에는 중국이 갈륨 등 일부 희소금속에 대한 수출 제한을 들고 나왔다. 주요 자원 거래를 위한 자유무역 시장이 사라진 것이다.
 
자유무역 상실의 시대에 공급망 관리를 위한 대안은 많지 않다. 과거보다 경제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국내 생산 복원 또는 제3국 수입처를 발굴하고 예산을 대폭 늘려 공공비축을 늘릴 수밖에 없다.
 
먼저 소위 ‘공급망기본법’이 제정(2023년 12월)됨에 따라 정부는 반도체 특수가스, 흑연, 희토 영구자석, 요소 등 185개 품목에 대한 공급망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국내 생산에 대한 자금 지원 등으로 채산성을 맞춰 주거나 중국이 아닌 제3국산 수입을 늘린다는 것이 골자다. 자유무역 대신 국내 공급망 관리를 위한 새판을 짜겠다는 것인데 이마저도 물량 확보 가능성 및 가격 변동성 등으로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른 수단과 비교해서 우리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공공 비축도 고려할 점이 많다.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겪어온 양곡이나 석유 등과 달리 광물자원의 비축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공급망 관리의 한 방법이었던 해외 자원 개발의 쓰라린 교훈을 되새기면서 공공비축과 공급망 관리 정책도 신중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달청과 한국광해광업공단이 광물자원의 공공비축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2019년 비축 기능 조정에 따라 조달청은 알루미늄 등 산업적으로 대량 유통되는 6개 비철금속을, 광해광업공단은 소량 활용되지만 신산업 활용도가 커서 자원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희토류 등 20개 희소금속의 비축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는 비축 확대 대상인 13개 광종의 희소금속 비축일수(비축량)를 2031년까지 현재의 50일 수준에서 주요국 수준인 100일분까지, 희토류 및 코발트 등 수급 우려 품목은 최대 180일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비축은 구매와 인프라 구축에 많은 돈이 들어가고 보관기간 동안 관리비용이 계속 발생하지만 활용이 되지 않으면 매몰비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기 때문에 전략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비축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비축과 별도로, 가능한 나라들과 공동비축을 병행해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화 스와프 협정 및 노르웨이 등과의 석유 공동비축을 참고해서 코로나 이후 중단된 한·미·일 비축기관 협의회 재개 등을 통해 가능한 국가들과 적절한 공동비축 운영 방안을 협의하여 버퍼를 두껍게 하고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 물론 경제안보를 공유하는 국가 사이라 하더라도 국가별 산업구조와 필요로 하는 원료 광물의 종료와 형태가 제각기 다른 만큼 상이한 스펙 문제 등 비축물자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제약을 풀어야 한다.

둘째, 민간 재고 보유와 별도의 안전판으로서 정부 비축 물량을 별도로 계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의 재고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보유 시점과 광종에 따라 큰 차이가 있지만 민간의 재고 보유는 2~3개월분 수준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유휴 비축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민간이 창고 공간·보관비용 등을 극복하고 재고 보유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한편 공공비축을 별도로 추진하여 나라 전체의 비축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공비축은 기업 등 나라 전체의 긴급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국익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공공비축 자산이 수요 기업의 이익을 결정하는 권한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적 수급 위기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긴급한 민간 수요 발생 시 대여를 탄력적으로 허용하여 일시적인 민간 수급 불균형을 바로잡는 한편 시장 조건에 부합하는 물량을 반환받음으로써 공공비축량이 재확충되도록 엄격한 준칙(discipline) 아래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산이 1년 단위로 편성되어 긴급 비축이 필요한 광종이 있어도 즉각적인 비축이 어렵다. 가격 변동성이 매우 높은 희소금속의 특성을 감안하여 광종 간 예산 전용 등을 허용하여 긴급한 비축물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넷째, 자원안보특별법안이 아직 법사위에 계류 중인데 21대 국회 종료가 몇 달 남지 않아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 최대한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되도록 하거나 다음 22대 국회 초반에는 입법됨으로써 제대로 된 비축을 통해 공급망 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현재까지 광해광업공단은 전용 비축 기지가 없어서 조달청 비축기지 일부를 임차하여 사용하여 왔으나 여유 공간이 태부족인 상황이다. 다행히 전북 군산에 계획 중인 전용 비축기지 조성사업이 지난주 예타를 통과하였고 2400억원 수준의 총사업비를 확정하였다.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한 전용비축기지 구축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행정적·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의 종합적인 계획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문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자유무역과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정부가 완벽하게 대신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및 광물자원을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구조를 생각하면 자원안보와 공공비축은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 할 과제다. 비축기관은 공공 비축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가능한 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반면 공공 비축을 통한 공급망 안정 및 산업안보 확립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비축사업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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