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공사비로 인한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 조합 내분 등으로 전국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사업이 지연되거나 멈추면서 ‘제2의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 사태가 재연되고 있다. 사업 일정이 밀리거나 중단이 장기화되면 사업비가 늘어 조합원 분담금이 치솟고 분양 일정에 차질이 생겨 입주 지연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방화6구역은 지난해 4월 철거를 완료하고도 공사비 갈등으로 1년 9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조합이 지난 2020년 시공사와 3.3㎡당 471만원에 공사하기로 했지만 이후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시공사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다가 3.3㎡당 727만원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3년 만에 55% 상승한 공사비에 일부 조합원이 소송을 걸어 공사가 멈춘 상태다.
이주를 마친 지 3년이 지난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도 아직 착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공사비 등을 놓고 협상에 나서야 하는 것이 최근 교체된 집행부의 과제다. 총 사업비만 3조원이 넘는 은평구 대조1구역의 경우 조합이 집행부 공백 등을 이유로 시공사인 현대건설에 1년 이상 공사비 1800억원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연초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최근 기존 조합장을 대체할 직무대행자가 선임되면서 급한 불을 끄며 공사 재개 가능성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인천 부평구 산곡6구역과 성남시 중원구 도환중2구역 재개발사업도 조합 내홍으로 사업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산곡6구역은 지난해 6월 3.3㎡당 일반분양가 1940만원, 공사비 590만원으로 책정된 뒤 일부 조합원들이 공사비 부담을 낮출 것을 요구했으나 조합의 별다른 대응이 없었고 이주 및 철거 등 사업 기간도 지연된 것을 이유로 이달 27일 조합장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총회를 앞두고 있다. 성남 도환중2구역은 조합 집행부가 특정 시공사에 유리한 입찰 지침서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조합 내부에서 제기돼 다음 달 6일 조합 임원 해임 임시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조합원들끼리 합의가 잘 돼 있는 곳이라면 총회를 열고 새 집행부를 꾸리는 데 몇 달 걸리지 않지만 분쟁이 발생하는 대부분의 정비사업장은 의견조율이 제대로 안 되는 곳들이 많다"며 "기존 조합장이 소송을 거는 등 분쟁이 더 길어질 수도 있어 조합 집행부와 내부 간 갈등이 생기면 실질적으로 조합 및 사업 정상화까지 빨라야 1년, 보통은 2년 정도는 걸린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지연이나 중단은 금융이자 부담 증가와 공사비 증가, 이로 인한 조합원 분담금 증가 등 연쇄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분양이나 사업 착공이 늦어지는 등 주택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정비사업 지연으로 착공이 줄어들면 분양 물량도 줄어들게 된다”며 “입주를 고려했을 때는 2~3년 뒤부터, 분양까지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당장 올해부터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양물량 감소는 수요자 주택 마련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 정부가 조기 대응 차원에서 대책을 서두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