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엄혹했던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남북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대화 채널이 차단되어 접촉은커녕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무력 충돌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남노선의 전환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의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나고 12월의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2019년의 3·1절과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의 실질적인 협력을 하자고 구애(求愛)했지만, 북한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정상 간의 합의를 무력화했다. 2020년 6월 김여정 담화를 통해 “확실하게 남조선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고 언급한 데 이어 2021년 1월의 제8차 당대회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가려는’ 자신들의 입장을 외면하고 ‘방역협력,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등 ‘비본질적 문제’에 집착하는 한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선의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김정일 사망 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은 제8차 당대회를 계기로 ‘통일’보다는 국가로서의 북한의 발전, 즉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사실상 ‘두 개의 한국’ 노선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번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이를 더욱 명확하게 제시했으며,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의 기구들을 정리·재편 의사도 밝혔으며 최선희 외무상 주재로 이를 위한 협의회도 개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신년사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고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하여 북한의 위협을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2일 담화에서 김여정은 “보다 압도적인 핵전력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당위성과 정당성을 또다시 부여해주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12일 국방부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의 국방력 증강계획을 발표했는데, 연간 국방비가 2024년 약 59조원에서 2028년 80조원까지 연평균 7% 단계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국방부는 지대공미사일 천궁-Ⅱ와 PAC3, 장거리 미사일 L-SAM 등으로 수도권과 핵심시설을 지키기 위한 요격능력을 보강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문제는 이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적들의 그 어떤 형태의 도발과 행동도 일거에 억제할 수 있는 압도적인 전쟁대응능력과 철저하고도 완전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기 위한 사업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지난해 12월 31일 인민군 주요 지휘관들을 불러 “언제든지 무력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 무력 충돌 발생 시에는 “순간의 주저도 없이 초강력적인 모든 수단과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 철저히 괴멸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은 1월 5일부터 사흘 연속 서해상에서 포사격 훈련을 하자 우리 군도 대응 사격을 했는데, 북한군 총참모부는 대응이라는 구실 하에 한국이 도발 행동을 감행할 경우 “전례없는 수준의 강력한 대응을 보여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은 이미 우리의 인식에서 삭제”되었다고 언급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월 5일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해상사격훈련을 주관하면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수 있는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연말 전방부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하면 즉각 보복 대응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지시와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김여정의 1월 7일 담화에 의하면, 북한은 전날 6일에는 포사격을 하지 않고 한국군에 망신을 주기 위해 해안포의 포성을 모의한 발파용 폭약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것은 총참모부의 호언과 달리 북한도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한국 총선거를 앞두고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 국내에서의 여론 분열과 윤석열 정권 비판을 유도하기 위한 여론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2월 발생한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은 곧 2년이 되어 간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사진과 영상이 SNS를 통해 확산하자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서방측 보도가 ‘가짜뉴스’라고 비난했지만,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반러시아, 우크라이나 지지 움직임이 확산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정부는 북한발 뉴스의 진위를 적시에 판별하여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2022년 12월 중순 북한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ICBM급의 고출력 고체 연료의 로켓엔진시험을 하고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단계의 중요 시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을 때 우리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의 기술 수준을 낮게 평가하자 12월 20일 김여정은 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담화를 내고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 경제지원을 얻으려 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고 체제안정과 생존을 확보하려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고 배치하는 것은 한·미·일과 전쟁상태에 들어갈 경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도도 내재한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강대강의 대치 국면이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외부적으로 고립되고 폐쇄적인 북한과 달리 우리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능력 보유는 필요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와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즉·강·끝‘(즉각, 강력하게, 끝까지) 원칙에 따라 추가 도발 의지와 능력을 완전히 분쇄하자는 것이 레토릭을 넘어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여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9월 북한은 국가핵무력강화정책을 헌법에 명문화했는데, 핵의 선제 사용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는 북한이 자신들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김여정이 호언한 대로 고각 발사가 아니라 실제 각도로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대기권 내 핵실험이라는 구실 하에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감행하게 되면 한반도 정세는 예상도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가버릴 수도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의 대화는 하루빨리 재개되어야 한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