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10월 31일 취임 후 두 번째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건전재정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2024년 총지출 증가율을 올해 5.1%에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8%로 대폭 하향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예산편성 과정에서 삭감한 23조원을 국방, 법치, 교육, 보건 등의 분야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주변 국가들의 국방비를 보면 군비확장 경쟁이 초래될 우려조차 든다. 올해 3월 5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우리 국회에 상당)에서 리커창 총리(당시)는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7.2% 증가한 1조5537억 위안을 배정했다고 보고했다. 전체 예산 증가율 6.5%를 웃도는 것으로 미국과의 장기적인 대립에 대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4일 뒤인 3월 9일 바이든 대통령은 2024회계연도(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의 예산편성 방침을 제시하는 예산교서를 발표했는데, 역대 최대 규모였던 전년도보다 3.3% 증가한 8864억 달러였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와 나토 등 동맹국의 방위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능력 강화를 위한 기금인 태평양 억제 이니셔티브(PDI)에 91억 달러, 핵의 현대화에 377억 달러 등이 책정되어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데 우선순위가 놓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8월 31일 일본 방위성이 공표한 2024년도 방위예산은 7조7385억엔으로 역시 역대 최고다. 지난해 12월 국가안보 전략 문서를 개정하면서 일본은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로서의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를 위해 2023년부터 5년간 43조엔을 방위비로 사용하겠다고 결정했다. 5조엔 전후였던 일본의 방위비는 올해 처음으로 6조엔을 넘어 6조8219억엔이었는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9000억엔 더 많다.
특히, 일본은 적의 영역에 있는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는 ‘반격능력’의 보유를 통해 일본의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인데, 이와 관련한 예산도 많이 반영되었다. 적의 사정권 밖에서 공격할 수 있는 스탠드오프 능력 정비를 위해 신형 지대지, 지대함 유도탄 개발 등에 7551억엔,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변칙 궤도를 비행하는 극초음속의 요격미사일 개발에 750억엔, 일본이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 개발하는 차기 전투기에 탑재하는 중거리 공대공 유도탄 개발에 184억엔,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 2척 건조에 3797억엔이 배정되었다.
현재 일본 자위대가 보유한 유도탄의 사거리를 늘려서 실전 배치되는 것은 빨라야 2026년인데,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를 위해 미국은 사정거리 1500㎞ 이상인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2025년부터 판매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4일 미·일 국방장관회담에서는 최신형 ‘블록-5’ 400발 가운데 200발을 구형 ‘블록-4’로 변경해 2025년부터 일본에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전략적 우위성을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미국이 판매에 동의한 것인데, 일본의 반격능력 보유는 중국의 반발을 사 일본의 안보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2022년 6월 말 현재 일본 정부 부채가 약 1255조엔이나 되는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의 방위비 증가율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 추진하는 방위력 강화가 완성되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에서 일본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자극해 3국의 군사력 증강과 협력 강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난 10월 23일 기시다 총리는 의회에서 전후 가장 엄중한 안보 환경에 직면해 5년간 43조엔의 방위비 확보를 통해 방위력의 발본적 강화를 신속하게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표명했다. 또한, 경제 안보를 포함하여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 등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한·일 및 한·미·일의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안보협력이 어떤 형태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0일까지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통일의식조사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군사동맹을 맺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물었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군사동맹에 동의(‘어느 정도 동의’와 ‘매우 동의’)하는 비율이 52.4%로 동의하지 않는 비율 47.7%보다 높았다.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일 군사동맹에 동의하는 비율이 55.5%로 동의하지 않는 비율 44.6%보다 10% 이상 높게 나타났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지지 정당에 따라 한·일 군사동맹에 대한 태도에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지지자 가운데 대북, 대중 군사동맹에 모두 찬성하는 사람은 62.2%로 민주당 지지자의 34.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의 23.8%와 민주당 지지자의 47.5%가 대북, 대중 군사동맹에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한·일 군사동맹 여부를 묻는 질문이 왜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다. 또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명박 정권 때 일본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려다 좌절했으며, 박근혜 정권 때 체결된 GSOMIA는 문재인 정권 시기에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2019년 8월의 종료 통보와 11월의 종료 통보의 효력 정지라는 비정상적 상태가 유지되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가 개선되면서 GSOMIA는 정상화되었는데, 앞으로 ACSA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했던 국민의힘 의원 출신의 신원식 국방장관은 2022년 8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했던 ACSA 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朝日新聞, 2022/8/22 인터넷판). 한·일 및 한·미·일의 안보협력 방향성과 내용에 관한 고위급의 협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양국이 국방비(방위비)를 늘려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안보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안보 환경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군비확장 경쟁을 막을 수 있는 전략도 중요하다. 우리는 국익에 부합하는 안보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검토하고, 그 연장선에서 한·일 양국이 공유 가능한 안보협력의 내용을 정해야 한다. 한·일 간에는 국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역사 인식 문제가 있지만, 이제는 한·일 안보협력의 범위와 내용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조진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도쿄대 법학박사(국제정치전공)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